연방대법원 판사 후보 브레트 M. 캐버너의 인준 청문회가 8월 4일 시작되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십 수 명의 시위자들이 체포되었으며, 한 상원의원은 ‘군중의 지배’라 비난했다고 5일 보도했다.

또 다른 보도에 의하면, 나이키는 전 NFL 커터백 콜린 캐퍼닉을 ‘Just do it’ 캠페인 30주년 광고 모델로 채용했다. 이 소식이 보도되자 주가가 3% 떨어졌고, 어떤 이들은 나이키 어패럴을 불태우는 시위를 벌였으며, 또 다른 이들은 나이키의 결정에 박수를 보냈다. 어떤 사람들은 캐퍼닉을 “새로운 인권운동의 얼굴”이라 부른다.

우리 사회는 더욱 분열되고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크리스천들은 험악한 “문화 전쟁”에 끼어들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 문화가 세속화되면 될수록, 하나님은 더욱 더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하나님을 덜 찾을수록, 우리는 그분을 덜 보게 된다. 그분을 덜 볼수록, 우리는 그분을 덜 찾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은 기도에도 적용된다.

예레미야애가는 BC 586년 예루살렘의 몰락과 제단의 파괴에 대한 저자의 슬픔을 그리고 있다. 3장에서 나라 잃은 저자의 슬픔은 그의 중보기도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닫아버리셨다. 내 앞길에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을 막으시고 내 갈 길을 뒤틀리게 하셨다”(8-9)고 투덜거린다. 그는 주님께 “주께서는 구름으로 스스로를 덮으시고 어떤 기도도 통과할 수 없게 만들었다”(44)고 말한다.

우리의 기도를 환경적인 결과로 측정하면 우리도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아무리 기도해도 사랑하는 사람이 여전히 아프면, 미래가 어둡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예레미야애가의 저자는 신앙을 고백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기도한다. “주여, 주께서 내 소송을 들으시고 내 생명을 구속해 주셨습니다”(58) 이제 저자는 하나님께서 “국가의 원수들이 한 그대로 그들에게 갚아 주실 것”(64)과 “여호와의 하늘 아래에서 그들을 멸망시킬 것”(66)을 알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고후 5:7) 믿음으로 기도했기 때문이다.

사탄은 교회를 공격할 때 두 가지 전략을 쓰는 것 같다. 하나는 기독교 역사 초기에 수백만 명의 크리스천들의 목숨을 앗아간 공격처럼 크리스천들과 그들의 리더들을 박해하는 정면 공격이다. 그런데 이런 공격은 자주 역효과를 낸다. 터툴리안이 지적한 대로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크리스천들을 박해했던 로마 제국은 결국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내가 만난 쿠바의 목회자들은 박해에 직면하는 일이 신자들을 강하고 순결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들은 카스트로 정권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그들의 교회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고 믿는다.

사탄의 두 번째 전략은 감지하기 힘들다. 세속 문화와 기독교회를 서로 갈라놓기보다 연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죄에 맞설 것과 회개를 독려하는 성경의 가르침, 얄팍하고 편안한 신앙은 도전 받으면 흔들릴 것이라는 깨우침 대신에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라”고 사탄은 우리를 꼬드긴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진 씨앗은 해가 뜨자 그 싹은 시들어 버리고 뿌리가 없어서 말라버렸다(마 13:5,6).

이처럼 사탄은 우리의 신앙을 우리의 환경으로 판단하길 원한다. 이 무너진 행성에서의 삶이 실망스러워서, 우리는 분노하고 좌절하며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다. 그러면 악순환이 시작된다. 주님을 덜 신뢰할수록, 덜 기도하고, 덜 기도할수록 덜 신뢰하게 된다.

혼돈의 시간에는 보다 나은 응답이 있다.

 

 

 

이집트의 안토니우스(AD 251-356)는 수도원 전통을 시작한 초기 “사막의 교부”들 중 하나였다. 유명한 신학자인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AD 296-373)는 안토니우스의 인품을 알아보고 우리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안토니우스는 기도와 금욕의 삶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유산을 이웃에게 주었다. 임종 시간이 다가오자, 그는 동료 수사들에게 “이제 타향을 떠나 모국으로 간다”면서 “날마다 죽는 것처럼 살 것"을 당부했다.

안토니우스는 우리가 모든 문화적 참여를 거부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로마 제국에 의해 핍박받는 크리스천들을 보살폈으며, 교회에 맞서는 아리우스파를 경계하라고 말했다.

그의 말의 핵심은 이 세상이 우리 집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섬겨야 할 주민들과 함께하면서 낯선 땅을 여행하는 거류민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렘 29:7). 우리는 어두운 문화 속에서 “세상의 빛”이라 불리도록 되어 있다(마태 5:14).

그러나 타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일시적이다. 중요하지만 영원하지는 않다. 우리는 지상과 낙원의 삶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두 가지 모두 선택할 수는 없다.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문화사역자 짐 데니슨의 9월 5일 칼럼 발췌 번역)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