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계란은 유정란일까? 무정란일까?”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40대 중반의 한 남자가 4~5세쯤 돼보이는 어린 소녀와 함께 서 있었습니다. 옆집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며, 손에 든 무언가를 내밀었습니다. ‘뭐가 미안할까?’ 하며, 손에 들린 물건을 본 나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계란 12개가 플라스틱 팩에 들어 있었습니다.

두 달여 전, 아침나절 익숙한 동물 울음 소리가 들려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꼬꼬댁! 꼬꼬댁!” 여기가 한국인가 착각할 정도여서 진원지를 찾느라 한참을 둘러보았습니다.  미국에서, 그것도 주택가 한복판에서 닭 울음소리를 듣다니. 제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는 집 뒷마당에서 닭을 기를 수 있습니다.  일정 조건을 갖추면 허가 없이 세 마리까지 가능합니다. 그 일정 조건 가운데 하나가 이웃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웃들의 허락을 받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기에, 집 주인은 양해를 구하는 마음으로 계란을 가지고 인사를 온 것입니다.

주택에서 생산된 계란을 타민족으로부터 선물 받은 것은 미국 생활 10여 년만에 처음 겪는 일이라 신기하고 유쾌했습니다. 하마터면 한국말로 “아이고! 뭐 이런 걸 다!”라고 말할 뻔했습니다. ‘이 귀한 걸 어찌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그 다음날 작지만 색이 짙은 노른자가 한가운데 있는 계란 프라이를 후르릅하며 한 입에 삼켜 버렸습니다. “역시 올개닉은 맛이 다르네.”라고 너스레를 떨면서요.

선물은 커다란 힘이 있는 모양입니다. 다음날부터 닭 울음 소리가 준비완료를 알리는 식당의 종소리처럼 들렸습니다. 또 계란을 가져다줄 리는 없을 텐데 말입니다. 그 날 딱 한 번 본 것뿐인데 저는 옆집 사람들이 교육적이라느니 친환경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느니 하며 칭찬 릴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닭에 관한 말씀들도 떠올랐습니다.  주님은 새벽을 깨우는 닭 울음소리(막 13:35)로 주님 오실 날을 설명하셨습니다. 사랑을 말씀하실 땐 암탉이 알을 품는 모습을 예로 드셨습니다(눅 13:34). 가야바 제사장의 집 뜰에서 들은 닭 울음소리는 베드로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습니다(마 26:34). 그래서 유럽에는 닭으로 장식된 교회 건물이 많습니다.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의 모습으로 기념하는 부활절의 의미는 해마다 새롭습니다.

계란이 병아리로 부화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1일이라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이 기간은 생각이 대뇌피질과 대뇌변연계를 거쳐 습관을 관장하는 뇌간까지 가는 데 걸리는 최소한의 시간이기도 하답니다.  이 사실을 발견한  미국의 의사 맥스웰 몰츠는 그의 책 『성공의 법칙』에서 습관을 바꾸는 ‘21일의 법칙’을 주장했습니다.

닭은 인간에게 많은 유익을 주는 동물입니다. 닭고기나 달걀에는 인체가 합성하지 못하는 라이신과 트레오닌 같은 필수아미노산이 들어 있습니다. 닭고기 1kg을 생산하는 데 드는 곡물의 양(2.1~3kg)은 소나 돼지고기를 생산할 때의 그것(10kg, 5kg)과 비교해 훨씬 경제적입니다. 저개발국가 사람들에게 닭은 최고의 영양식임이 분명합니다.

반면 닭과 관련된 비극도 있습니다. 조류독감 진단을 받으면 엄청난 수의 닭들이 살처분을 당합니다.  2016년 한 해에만 한국에서 2,500만 마리의 닭들이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한국에는 대기업 임원 출신의 종착지가 치킨집이라는 웃픈 표현이 있습니다.  그렇게 개업한 가게의 40%가 1년 안에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비틀어지는 것은 닭의 모가지뿐이 아닌 듯합니다.

한편 최근 뉴스에 의하면, 일본의 바이오 메디칼 연구팀은 게놈 편집으로 불리는 유전자 조작기술을 통해  암과 간염 치료에 효과적인 희귀 단백질 “인간인터페론베타”를  함유한 달걀을 낳는 닭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달걀 1개의 가치가  6천만 엔(6억)에서 3억 엔(약 30억 원)에 달한다고 하니 이제는 ‘황금알을 낳는 닭’이라는 동화가 나올지 모릅니다. 창조와 생명의 윤리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도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 계란은 유정란일까? 무정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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