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태복음 6:5-13).

유혹의 세 가지 실체

"우리는 머리가 세 개 달린 용 가까이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세상, 우리를 삼키려 배회하는 마귀, 우리 안에 있는 육체가 그것입니다. 용이 으르렁거릴 때마다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저녁 시간에 방문한 친구 같을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로 출발해 영성가가 된 래리 크랩의 말입니다. 그의 말은 우리를 유혹에 빠지도록 만드는 세 가지 실체를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세 가지 실체는 세상과 마귀 그리고 우리 자신입니다. 이 세 가지는 때로는 강력하게 때로는 은밀하게 우리를 유혹하여 넘어지게 합니다. 강력하게 다가올 때도 위험하지만 실상은 저녁 시간에 방문한 친구같이 친근하게 다가올 때가 더욱 위험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원수인 마귀는 우리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것에 대해 감탄스러울 정도로 속삭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는지, 그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에 집중하도록 합니다. 그는 우리의 유익에 관심을 기울이며 친근하고 좋은 의도를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종교적인 용어를 많이 사용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할 수 있는 것이나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 주로 말합니다."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다가오는 마귀에 대해 우리는 경계심을 늦출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 좋은 의도로 발을 내디디지만 결국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도록 접근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앞에 내세우도록 하여 우리를 유혹에 빠지도록 만드는 마귀의 유혹의 기술은 가히 달인의 경지라 할 것입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마귀의 유혹에 넘어집니다. 자신이 마귀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주장하며 더 많은 사람들을 같은 유혹에 끌어들입니다. 래리 크랩이 말하는 것처럼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유혹(시험) 기사를 통해 우리를 넘어뜨리는 유혹의 세 가지 실체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세상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2-3).

첫 번째 시험은 현실적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먹을 것이 떨어지는 것은 우리 앞에 닥친 현실입니다. 병에 시달리고 생명을 위협받는 것도 현실입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도록 요구받는 것 또한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입니다. 세상은 필요의 모습으로, 고통의 압박으로, 문화의 가면을 쓰고 현실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도록 우리를 압박합니다.

이러한 세상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란 없습니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통이나 소외를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을 전혀 인식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이 되라는 세상의 요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삶의 유혹입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떨쳐버릴 수 없는 한계입니다.

또한 그것은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다가오는 유혹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래도 견뎌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면 그 유혹은 더더욱 이기기가 어렵습니다.

"예전에 페루의 리마 변두리에 있는 '달동네'들을 다녀보았습니다. 만일 그때 길거리에 쫙 깔려 있는 먼지투성이 돌들에게 신비한 마술을 부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그 돌들 가운데 어느 것을 집어 들든지 크로와상이나 커피 케이크나 건포도 롤빵으로 변하게 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두 손을 동그랗게 오므려 저수지의 썩은 물을 받으면 그것이 맛있는 우유로 변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즐겁게 마시도록 할 수 있는 신비한 은사를 제안 받았다면, 아마 나는 거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헨리 나우웬, 『예수님의 이름으로』)

헨리 나우웬의 말입니다. 그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그들을 어려움에서 건져낼 수만 있다면 정말 어떤 일이라도 할 것입니다. 그만큼 현실의 힘은 위대하고 세상은 거역할 수 없는 한계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는 스스로 살 수 있어, 하나님도 필요 없고 교회도 목사도 필요 없어.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단 말이야.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렇게 하도록 더 열심히 해야 해, 문제는 믿음이 아니라 자신감이 없는 거야. 만일 아프다면 유능한 의사가 필요할 테고, 가난하다면 능력 있는 정치가가 필요하지. 또 기술적 문제가 있다면 유능한 엔지니어가 있어야 하고, 전쟁이 일어났다면 능력 있는 협상가가 필요하겠지. 하나님, 교회 목회자가 지난 수세기 동안 무능력의 골을 메워 왔지만 오늘날 그 골은 다른 방법으로 메워지고 있어. 그러기에 우리는 실질적인 문제에 대한 영적인 대답은 더 이상 필요 없어."(헨리 나우웬, 같은 책)

세상은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자긍심을 한껏 부추기면서 한사코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만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 스스로 전문가가 되거나 전문가들에게 의존하는 길을 택합니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영적인 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사장시킵니다.

예수님의 유혹 기사에서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이 같은 세상의 막강한 힘입니다. 세상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우리의 현실을 몰아붙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연약한 존재입니다. 현실의 요구 앞에 우리는 무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먼저 유혹을 받으셨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감사한 일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4).

예수님은 물질적 필요를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이 가지는 막강한 힘에 대해 모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인생의 우선순위에 대해 분명히 밝힙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그리스도인에게 세상은 종착역이 아닙니다. 세상은 과정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나라에서의 삶을 위한 변화의 기회이며 과정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주기도의 청원은 따라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겠습니다. 라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육체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5-6).

예수님께 닥쳤던 두 번째 시험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일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열렬한 환호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일을 해보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증거를 요구합니다. 믿을 수 있을 만한 그 무엇인가를 내보이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만한 무엇인가를 해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수많은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이 유혹에 넘어가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차별화하여 경쟁에서 이기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사람들로부터 멀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와 반대되는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큰 자가 아니라 작은 자가 되어야 하는 나라입니다. 작은 자가 되고 무명의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가려야 하는 곳입니다. 작은 자가 되어야 서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큰 자들은 작은 자들을 동정할 수는 있지만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다르게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당신의 사역이나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그 능력을 사용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이 기적을 사용하신 이유는 가난한 자들과 병들고 소외된 자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의 긍휼한 마음이 기적을 사용하도록 만들었을 뿐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여 인정받기 위한 경우는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 그런 일은 필연적으로 경쟁을 유발하고 경쟁은 하나님 나라를 무너뜨리는 강력한 지렛대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경쟁할 수 없습니다. 종종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로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욕망의 합리화일 뿐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7).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유혹에 대항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살펴보면 목회자들 사이에 개인주의가 만연해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여 인정을 받으려는 것임과 동시에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임을 까맣게 모르는 것입니다. 스타 의식과 개인주의적 영웅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은 예수님처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분명하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연약합니다. 그러면서도 상당히 교만해지기 쉬운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들입니다. 유혹에 취약한 육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자칫 육체의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신성모독의 범죄를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뒤를 똑같이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자신을 늘 깨어 바라보면서 자기부인이라는 기독교 특유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힘과 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8-9).

예수님이 받았던 세 번째 시험은 힘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마귀는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고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천하만국과 그 영광은 다스릴 수 있는 권세 곧 힘입니다. 그것의 현실적인 수단이 돈입니다. 힘과 돈은 마귀의 가장 강력한 통치 수단입니다. 그것이 너무 강력해서 사람들은 저항해야 할 무엇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힘과 돈은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끊임없이 힘과 돈의 유혹에 굴복했다는 사실입니다. 힘과 돈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힘과 돈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할 하나님 백성의 기본적인 사명을 망각하고, 오히려 기독교 사역을 위해 힘과 돈을 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역전이 대세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돈이 곧 축복이라는 인식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팽배해 있습니다.

가장 큰 유혹은 힘과 돈을 복음 선포의 유용한 도구로 간주하는 태도입니다. 힘과 돈을 소유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섬기기 위해 유익할 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확실한 증거라는 오해에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돈과 힘의 은밀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마귀의 유혹의 힘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10)고 단호하게 마귀의 제안을 거절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사실 우리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병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존재로 창조된 인간의 본성이 범죄함으로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힘과 돈의 사용을 거절하고 사랑의 태도를 견지하려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일 것입니다.

유혹을 이긴 세 가지 축복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 수종드니라."(11)

유혹을 이기신 예수님에게서 마귀가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 수종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유혹을 이겨낸다면 천사들의 수종을 받을 것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주님께서 주기 원하시는 온전한 축복들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축복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1)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갈 때 가장 먼저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 그분의 환영을 받고 그분의 기뻐하심을 느끼고 그분의 은혜가 우리 안에 임할 때 우리의 더러운 모습 뒤에 숨어 있던 아름답고 바람직한 모습을 발견하고 새로운 인생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사랑을 나눌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속해 있음을 깨닫고 그분의 뜻에 따라 선을 행하는 자로 살고 싶은 열정과 능력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 백성 공동체가 됩니다.

하나님 백성의 삶의 가장 큰 유익은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백성들이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은 세상의 문화적 압박에 대항하여 그보다 더 좋은 사회, 그보다 더 완벽한 사회가 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세상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겪는 불이익을 감수할 수 있는 피난처를 세상 속에서 제공 받는 것이기도 합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영적 친밀함을 나눌 때 더욱더 말씀을 잘 실천하며 살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됩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행할 수 없었던 복음의 삶을 살 수 있으며 세상의 저항에도 세상 속에 있으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은 온전한 그리스도인들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공동체의 삶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한 소망이 무엇인가를 볼 수 있는 '산 위의 동네' 역할을 하게 됩니다. 거기서 아가페의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임을 온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때까지 변화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과 공동체의 경험은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과 다른지를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 부족함을 깨닫고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비천함이 감사를 불러올 것이며 우리를 겸손하게 하여 진정한 변화의 길에 들어가게 할 것입니다.

깨어짐과 회개의 은혜는 온전한 의탁으로 인도합니다. 자신의 변화가 성령에 의한 것임을 깨닫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한 사람이 되어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갈망을 느끼면서 조금씩 그리스도를 닮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우리 안에서 생수가 흘러넘치기 시작할 것입니다. 부족을 깨닫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존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신앙생활은 선순환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 변화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변화의 기적을 겸손히 바라보며 더 이상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청원은 바로 그 길을 인도받기 위한 기도입니다.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여 마침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복음됨은 거기까지 가야 알 수 있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세상의 파고는 높고 우리 자신은 연약하며 마귀의 권모술수 또한 상상을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주기도의 청원을 상기하며 겸손하지만 단호하게 신앙의 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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