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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성경으로 보는 분별의 흑역사 10
박준형 칼럼니스트  |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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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26  01:4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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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모든 비유 말씀이 우리의 분별을 요구하지만, 마태복음 13장 24-30절과 36-40절에 소개되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는 세상 사는 동안 왜 분별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단초를 제공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밭)에는 가라지가 있다. 가라지를 심은 자는 원수이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로 비유한다.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다. 이들은 함께 자란다. 가라지들, 악한 자의 아들들을 미리 뽑아 불사를 수는 없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악한 자들을 죽이려다가 착한 자까지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방법은 딱 하나! 같이 사는 것이다. 가라지와 곡식이 함께 사는 것. 악한 자와 착한 자가 함께 사는 것. 세상 끝에서야 비로소 가라지는 거두어 불사르게 되고, 악한 자들은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런 밭, 이런 세상에 있다. 선악이 공존하는 세상. 가라지가 곡식을 뒤덮어 햇빛을 받기 어려운 세상. 가라지의 뿌리가 땅의 자양분을 다 차지해 곡식의 뿌리가 제대로 숨쉬기 어려운 세상.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분별을 해야만 한다. 물리적인 동작을 취하기도 어려운 상황. 섣불리 맞서 싸울 수 없는 상황. 가라지들이 하는 대로 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 참아야 하는 상황. 때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

가라지가 뭐길래? 가라지는 눈에 보이는 밭에만 있는가? 『알곡과 가라지』에서 토마스 그린 신부는 가라지를 세 가지로 분류한다. 세상적인 것과 자신의 정욕과 사탄의 유혹.

첫째, 세상적인 가라지는 곧 구조적인 악을 말한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의 작은 영웅인 안네 프랑크처럼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안달하는 독일군인들도 마음은 선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당시의 독일과 나찌는 악 그 자체였다. 구조적인 악. 바울의 말씀처럼, 우리는 여전히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엡 6:12)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우리들이 보고 있는 가시적인 대상들은 모두, 그것이 회사이든 교회이든 나라이든, 구조적인 악으로 탈바꿈하기 쉽다.

둘째, 세상적인 가라지가 가시적이라 판단이 쉬울 수 있다면, 가장 속기 쉬운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정욕이다. 이것은 자신만 아는 ‘은밀한’ 가라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개인적인 욕심과 악은 성경의 주요 주제가 되고도 남는 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5).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타오르는 상승 욕구, 성취 욕구, 인정 욕구, 소유 욕구…. 어떻게 이런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우선 우리의 변덕스런 인간성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의 정신과의사 스캇 펙은 인간의 악을 연구한 책 『거짓의 사람들』에서 “악은 복종할 줄 모르는 자기의지”라고 정의하면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악을 행하지 않는다. 자신을 스스로 깨끗하다고 여기지 못하는 사람, 자신의 동기에 자주 마음이 걸리는 사람, 자신의 본성이 드러날까봐 마음 졸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악을 좀처럼 저지르지 않는다. 이 세상의 악은 영적인 특권층에 의해 저질러진다. 이 시대의 바리새인들, 그들은 자기 성찰의 불쾌감을 눈곱만큼도 견뎌 낼 마음이 없으면서 그걸 핑계 삼아 자기는 죄 없는 깨끗한 존재라고 스스로 치부한다”고 말했다. 예리한 지적이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의 근원인 마음의 가난이 없어질 때가 바로 우리 안의 악의 기운이 움틀 때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스캇 펙은 악과 대항하지 말고, “우리 자신이 인생을 자발적으로 생명력 있게 살아가는 과정에서 악이 그냥 질식해 죽도록 내버려두라”고 조언한다.

셋째, 우리가 상대하기 가장 힘든 사탄이라는 가라지가 있다. 사탄은 하나님의 흉내를 내고 혼자 일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그는 늘 부하들을 찾고 조력자들을 찾아 이용한다. 그게 세상일 수도 있고, 우리의 정욕일 수도 있고, 우리의 영적 범위를 넘는 것들일 수도 있다. 사탄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범국가적으로도 타락을 유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대상 21:1,7).

가장 지혜로운 대처는 베드로전서 5장 8-9절의 말씀과 같이 근신하고 깨어서 사탄이 아예 틈타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그럼에도 사탄이 유혹하면, 마태복음 5장 39-40절의 말씀처럼 가능한 한 사탄을 피할 것이며, 감당할 수 없거나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에베소서 6장 12-13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고,” 야고보서 4장 7절의 말씀과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다.

싫든 좋든 세상 사는 동안 우리는 여러 종류의 가라지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우리에게 믿음의 확신이 부족하다면 성가신 가라지들을 당장 모두 뽑아 불사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라지들을 그냥 내버려두라신다. 가라지들과 함께 살라고 하신다. 그렇더라도 잊지 말 것은, 가라지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고 해서 우리 스스로 가라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치 않는 고난을 겪을 때, 팔짱 끼고 앉아 킥킥대는 새디스트가 아니시다. 그는 죄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구원해 내신 전지전능의 하나님이 아니신가? 자신의 독생자까지 세상에 보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자비의 하나님이 아니신가?

아직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을 뿐이다. 고난은 단지 과정일 뿐임을 잊어선 안 된다. 고난은 지나갈 것이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더 이상 분별할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모든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때까지 오직 인내하고 또 인내하는 것이다.

주님은 이런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때까지 삼중, 사중의 어두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좌절하는 것 역시 죄가 아니던가?),시험 당함을 기쁘게 여기고(롬 5:3; 약1:2), 온전한 인내를 이루는 것(왜? 인내가 인격을 인격이 결국 희망을 낳을 것이므로!), 이것이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와 우리에게 물려준 분별의 흑역사의 고리를 끊는 가장 지혜롭고 현실적인 분별의 행동지침이 될 것이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므로”(시 34:19), 끝까지 참고 부족함 없는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약 1:4). 우리들의 인내가 다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환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분별의 여정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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