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on Spirituality 77

 

“예수 비유 묵상” 여섯 번째 시간인 오늘은 기도에 대해 가르쳐 주는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눅 18:1-8)를 함께 묵상합니다. 김기석 목사님은 <삶이 메시지다>라는 책에서 “기도는 근본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기도는 삶의 기초를 세우는 일이고, 나의 중심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그래서 삶이 무너져내릴 때, 믿음이 약해져갈 때, 공동체가 힘을 잃어갈 때, 근본을 세우는 일인 기도에 힘을 써야 합니다.

신뢰 세우기

"과부와 재판장" 비유에서 예수님은 신앙과 삶의 근본이 되는 세 가지를 기도를 통해 바로 세우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첫째,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세워 줍니다. 이 비유는 이런 내용입니다. 한 마을에 불의한 재판관이 있었는데, 억울한 일을 당했던 한 과부가 재판관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계속 청원합니다. 재판관은 힘없는 과부의 청원에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부가 계속해서 재판관에게 청원을 하니, 나중에는 귀찮아서 과부의 청원을 해결해 줍니다.

예수께서는 이 짧은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18:7)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바로 “하물며”입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계속되는 청원을 듣고 해결해 주는데, 하물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다양한 모습으로 응답하십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적극적인 Yes로 응답해 주십니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기도에 No라고 응답하시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간구하는 것을 주기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기다리라”는 응답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방법”으로 응답하시기도 합니다. 다른 응답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평안과 기쁨입니다. 삶의 문제가 여전히 나를 삼킬 듯이 달려드는데, 이 문제 속에서 내 마음에 이상하리만치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찾아온 평안을 붙잡고, 삶의 문제를 감당하고 이겨내게 됩니다. 

이러한 기도 응답의 다양한 모습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응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신뢰입니다(마 7:7-9).

믿음 세우기

기도가 우리의 근본을 세워 주는 두 번째 모습은 믿음을 세우는 일입니다. 오늘 비유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수수께끼 같은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18:8). 예수님이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깊이 생각해 보면, 기도와 믿음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자가 다시 올 때”라는 말씀은 주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의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기도 가운데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가장 완전하게 응답을 경험하게 되는 기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악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기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구하는 기도, 진정한 평화가 세상에 펼쳐지기를 구하는 기도, 하나님의 생명을 풍성히 누리는 것에 대한 기도 등입니다. 이러한 기도들은 우리가 기도를 드리는 순간에도 경험하지만,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그때에 가장 완전하게 응답을 받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다시 오시는 그 순간에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기도하는 사람을 볼 수 있겠느냐고 물으십니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은 기도가 응답되기 전까지 믿음 가운데 기도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기도를 하는 사람은 “사이의 시간”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것은 내가 기도하는 순간과 기도가 응답받는 순간 사이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이 사이의 시간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이 시간에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어떤 기도 응답을 염두에 두고 기도하지만, 사이의 시간에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의 계획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한국교회사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순교를 당했던 주기철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은혜와 도전을 줍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막내 아들 주광조 장로님과 나눈 고난에 대한 대화가 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마지막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 전에 당시 열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막내아들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은 왜 기도해도 들어 주시지 않는 거지요? 할머니와 어머니가 금식하면서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하시는데도요.” 그러자 주기철 목사님이 이렇게 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들어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란다.” 막내 아들이 다시 묻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쌀도 필요하고, 아버지도 필요한데요?” 그러자 주기철 목사님이 말합니다. “그건 지금 눈에 보이는 문제일 뿐이지. 하나님이 보시기에 지금 우리 가정에 필요한 것은 고난인 듯 싶구나.” 막내 아들에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고, 지금 우리 가정에 필요한 것은 고난 같다고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이것은 결코 쉬운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주기철 목사님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기도에서 붙잡아야 할 믿음은 내가 기도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아닙니다. 기도에서 붙잡아야 할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는 믿음,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얼마나 우리와는 다른 모습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발견하고 동참하려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에게는 축복임을 발견하는 믿음입니다. 기도와 기도 응답의 “사이의 시간”에서 기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게 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우리의 믿음을 세워 주게 됩니다.

희망 세우기

마지막으로 기도가 세워 주는 것은 희망입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희망이 세워지는 은혜를 누리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니라”(18:1). 이것이 오늘 비유를 가르쳐 주시는 목적입니다. 기도하기 때문에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래된 복음성가 중에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염려하십니까?”라고 고백하는 찬양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예수님이 주시는 말씀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라.” 우리는 기도할 수 있는 한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는 순간이 찾아와도 아직 기도할 힘이 남아있다면 우리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새찬송가 620장 <여기에 모인 우리>의 2절 가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이 뜻하신 일 헤아리기 어렵더라도 언제나 주 뜻 안에 내가 있음을 아노라.” 때로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내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기도 가운데 발견한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계획대로 나아가면 우리는 망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계획대로 나아가면 결코 망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을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라는 희망 자체를 붙드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희망을 세워 주는 시간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을 때, 우리는 기도가 세워주는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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