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저널
> 신학·영성 > 느끼기+생각하기
소비주의에서 벗어나는 길
크리스찬저널  |  webmaster@kcjlogos.org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10.13  01:03:0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20년 전에는 이처럼 많은 종이상자들을 본 적이 없다. 지금 수백만 미국인들처럼 우리 집도 아마존 로고가 붙은 갈색 상자들의 정기적인 종착지가 되어 있다. 한때는 온라인 서점이었던 아마존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물건을 판매하는 기업이 되었다.

아마존은 전자책 단말기와 홈 시큐리티 시스템부터 식품에 이르기까지 소비자가 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판매한다. 아마존의 사업 모델이 성공하고, 전통적인 소매업자들이 쇠락하는 이유는 무얼까?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제프 베조스는 지난 가을 경제인 모임에서 “우리의 주된 성공 요인은 경쟁자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고 소비자를 지나치게 신경 쓴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우리의 문화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이다. 소비자 중심의 사업 모델이 작동하는 이유는 무얼까? 두 가지 사실을 생각해 보자. 이는 오늘의 교회와도 상관이 있다.

하나 : 베조스의 말처럼, 우리는 항상 싼 가격, 빠른 배달, 넓은 선택폭을 원한다. 우리는 그 모두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기업을 신뢰한다. 이처럼 교회의 경우에도 듣고 싶은 말을 들려 주는 교회로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발견했다. 쿠바를 여행하는 동안 경제적인 어려움과 정부의 박해를 각오하고 그리스도의 편에 서는 크리스천들을 보았다. 직업이나 목숨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무슬림들을 만났다. 정부 검열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데도 중국에서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들을 알고 있다.

둘 : 우리 문화는 그 어느 때보다 개인을 감싸고 있다. 몰에서의 쇼핑은 일종의 공동체 경험이다. 영화관과 극장에 가는 것이나 교회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소비주의는 공동체도 무너뜨리는 것 같다. 집에서 쇼핑할 수 있고, 셀폰으로 콘서트를 감상할 수 있으며, 온라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그러나 팟캐스트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방문할 수 없다. 듣고 싶은 말만 들려 주는 목회자들은 들을 필요가 있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오스왈드 체임버스는 “죄는 본질적인 관계이다. 그것은 그릇된 행동이 아니다. 그릇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단호하게 의지적으로 돌아서는 것이다.”라고 썼다. “다른 종교들은 죄들을 다룬다. 성경만이 죄를 다룬다.”라고 체임버스는 지적한다.

종교들과 사회들은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법들을 만들지만, 벽 속의 균열들을 메운다 해도 기초를 바로잡지는 못한다. 『고통의 문제』에서 C. S. 루이스는 “우리는 단지 개선되어야 하는 불완전한 피조물이 아니다. 뉴맨이 말한 대로 팔을 내려야 하는 폭도들이다.”라고 강조했다. 루이스는 “우리가 오랫동안 우리 것이라 주장해 온 의지를 돌려 드리는 일은 엄청난 고통이다. 자아의 항복은 일종의 죽음”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선 이들에게 이 일이 어렵다고 설명한다.

임종 시에 다윗 왕은 솔로몬에게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열왕기상 2:2-3)고 유언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다윗 왕은 솔로몬에게 해준 충고대로 살지 않았다. 솔로몬도 마찬가지였다. 좀 더 나아지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면, 예수님은 천국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셨을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일은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큰지, 구세주의 용서가 얼마나 큰지를 드러낸다.

지금 예수님은 우리에게 소비주의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신다.

헨리 나우웬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들 사이에 계시며, 세상에 그리스도의 임재를 함께 증거 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 안에 살아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영혼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공동체로 인도하지 못하는 소비주의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실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따르는 사람들만 이끌어 주실 수 있고, 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실 수 있다.

드와이트 무디는 우리에게 충고했다. “하나님께 당신의 생명을 드리자. 하나님은 당신의 생명으로 당신보다 더 많은 일을 하실 수 있다.”

성령님께 능력을 구하고 오늘 우리를 이끌어 달라고 청하면(엡 5:18), 성령님은 우리의 삶에 의미를 더해주실 것이다. 앤드류 머레이의 말대로 “하나님은 당신께 온전히 맡겨진 생명에 대해 온전히 책임지실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 편집자 주 : 문화사역자 짐 데니슨 목사의 10월 9일 칼럼 발췌 번역)

크리스찬저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떠나고 싶은 교회
2
예배,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3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장례식
4
말의 품격
5
기도해야 하는 이유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235 N. Elston Ave., Chicago, IL. 60630  |  Tel: (773)777-7779  |  Fax: (773)777-0004  |  청소년보호책임자 : SAMUEL D PARK
Copyright © 2013 The Korean Christian Journal. All rights reserved. mail to kcj@kcj777.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