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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잘 사는 길베드로전서 2:16
허영진 목사  |  revhu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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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24  00:3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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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년 전 내가 졸업한 중학교의 교훈이 “잘 살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참 못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널리 불리던 국민가요가 “잘 살아 보세”입니다. 이 무렵 북한의 김일성은 “기와집에 비단옷 입고 니팝에 고깃국 먹게 해주겠다”고 주민들을 독려했습니다.

남과 북의 잘 살기 경쟁은 대한민국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습니다. 산업화에 성공한 남한은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OECD의 회원국도 되었습니다. 피원조국에서 원조국 지위로 올라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합니다. UN이 3월 20일을 행복의 날로 정하고 143개국을 대상으로 행복 점수를 매겨보았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 점수는 100점 만점에 59점으로 나왔습니다. 학점으로 치면 낙제 점수입니다. 나라 순위로는 118위입니다.

우리는 정말 잘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다시 물어야 합니다. 경제가 잘 사는 길의 유일한 열쇠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잘 사는 길은 과연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성경이 대답합니다.

“여러분은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그러나 그 자유를 악을 행하는 구실로 쓰지 말고, 하나님의 종으로 사십시오”(벧전 2:16 새번역).

초대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식민지 백성이거나 노예 신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자유를 누리는 것은 바랄 수 없는 일입니다. 중국의 양계초는 “참다운 자유를 얻고자 하거든 심중의 노예를 제거하는 데서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자유가 바로 이 자유입니다.

세 가지 심중의 노예가 있습니다. 죄와 죄책감과 불안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이었으나 죄의 세력으로부터는 자유로운 자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죄의 사슬을 끊어버린 자유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고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많은 정신질환이 죄책감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죄책감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철인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불안은 항상 그림자처럼 인간을 따라다닙니다.

알렉산더 대제가 소년 시절 아무도 길들이지 못하는 크고 사나운 말 부케팔로스를 순식간에 진정시켜 부왕 필리포스를 놀라게 했습니다. 알렉산더는 말이 자기 그림자를 보고 불안하여 날뛴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말머리를 태양을 향하게 하여 그림자가 사라지게 함으로써 간단히 문제를 해결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진리의 태양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바로 서서 그의 사랑과 능력의 햇살을 겸손히 받아들이면 불안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맙니다.

현대인은 기독교 후기의 성숙한 인간이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도 복음도 필요 없을 만큼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없이 타락해 가는 인간 윤리와 나날이 포악해지는 범죄 현상, 격증하는 정신질환, 잠 못 이루는 수많은 밤은 여전히 죄와 죄책감과 불안에 몸부림치는 현대인의 노예 상태를 보여줍니다.

죄와 죄책감과 불안으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임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참으로 잘 사는 길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자유인으로 살되 동시에 하나님의 종으로 살라고 당부합니다. 충성을 바칠 대상을 바로 정하라는 말입니다. 표현을 바꾸면“위하여 살고 죽을 주인”을 선택하라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영웅을 찾아 충성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영웅이 충성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들도 죽을 수밖에 없는 상대적 인간이었고, 그 위대성이나 업적도 퇴색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데올로기 즉 무슨 주의나 사상에 충성을 바치는 것이 좀 더 고상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시대도 이제는 지나갔습니다.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이념이나 사상도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은 못 됩니다. 언젠가는 그것들도 낡아지고 평가절하되는 때가 오고야 맙니다.

그러면 인간이 충성을 바칠 만한 대상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대답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종으로 사십시오”(벧전 2:16). 우리가 충성을 바칠 대상은 하나님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만이 영원하신 절대강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선언했습니다. “오늘날 너희의 섬길 자를 택하라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노라”(수 24:15).

참으로 잘 살기를 바란다면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종으로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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