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예배 시리즈 (1)

하나님의 성소인 에덴

에덴 동산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소였습니다. 하나님 창조의 중심에 있으며 인간과 하나님의 교제가 있는 곳, 창조의 기억이 있는 곳이 에덴 동산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인간과 하나님의 연합된 관계를 깨기 위해 불순종과 교만의 왜곡된 예배 양식을 불어 넣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교만과 불순종의 죄로 더 이상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 나아갈 수 없게 됩니다. 창세기 3장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소인 에덴 동산에 죄인이 머물 수 없다고 묘사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타락한 이후에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숨었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그들의 수치를 가리려 했지만, 하나님은 동물 가죽으로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덮어 주십니다.“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예전학자 앨런 로스(Allen Ross)는 가죽옷이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궁극적으로 회복시킬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의 부끄러움을 임시로 덮어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가죽옷을 위해 동물의 희생, 즉 피흘림이 있어야 했는데 이는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과 교만이라는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타락한 이후 에덴 동산의 생명나무를 천사가 지켰는데,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지성소의 휘장을 반영합니다. 이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 솔로몬의 지성소에는 실제로 두 명의 천사 상이 세워졌습니다. 생명나무를 지키는 천사를 상징하는 휘장은 죄인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다가갈 수 없도록 막는 벽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도록 하는 구원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됨, 그리고 부활을 통해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을 분리시킨 벽을 깨뜨리십니다.

더 나은 제사

창세기 4장에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가 처음으로 갖추어진 제사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으시지 않았고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아벨은 첫 소산 중 가장 살진 것을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히브리서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 11:4).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좋게 여기시지 않고 그가 바친 제물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가인은 너무나 화가 나서 안색이 변했습니다 (창 4:5). 하나님께서 화가 난 가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를 내느냐 ? 어째서 안색이 변하였느냐 ? 네가 잘하였다면 어째서 내가 네 제물을 받아들이지 않겠느냐 ? 어째서 고개를 들지 못하느냐 ? 네가 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면 죄가 네 마음의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있다가 급기야는 너를 집어삼키고 말 것이다. 그러니 너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리라”(창 4: 6-7).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해 보듯이, 우리의 모든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없거나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자신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다고 분통해 하며 나쁜 생각을 하는 가인 같은 자들은 예배를 통해 도리어 죄를 짓게 됩니다.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 중심적인 예배의 대표적인 모습이고, 가인의 제사는 인간 중심적인 예배의 표본입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인간 중심적인 예배는 인간의 관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 중심적인 예배는 기복적이고 가짜 신앙인 율법주의적 예배를 가능케 합니다. 이러한 예배는 하나님께서 결단코 받지 않으십니다.

예배의 왜곡과 회복

창세기 8장에는 대홍수 이후 노아의 제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창 8:20). 이 제사는 죄가 만연한 세상에서 홍수 심판 가운데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신 구속의 의미와 그 구원에 대한 감사의 예배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심판 후 첫 제사인 노아의 제사에선 구원에 대해 감사했지만, 창세기 11장에는 고대 피라미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바벨탑 사건이 나옵니다. 로스 박사는 바벨탑 사건을 통해 창세기 8장과 11장 사이에 대략 100년 동안 하나님을 향한 제사 의식이 이교도의 왜곡된 형태로 변질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고대 근동에는 하늘, 해, 달 같은 우주적 대상에 대한 종교가 발달되어 있어서 제사, 장례, 축제에서 이것들을 향한 종교적 행위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의 가나안 지역에 살았던 이교도들의 종교행위를 보면, 가나안 사람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우상과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을 위해 뱀을 이용한 예배, 매춘 행위, 어린아이 제사 등 비정상적인 종교행위들을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이기보다 자기 자신만의 종교체계를 세우는 것을 선호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

이런 상황에서 아브라함이 야훼 하나님만 온전히 믿고, 믿음의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순종한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믿음의 행위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였습니다. 여호수아 24:2에서“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라고 말하듯이, 아브라함의 선대도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처음 도착한 세겜에서 아브라함은 단을 쌓았습니다. 두 번째 장소인 벧엘에서도 단을 쌓았습니다. 다시 헤브론 땅에 이르러서도 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나타나신 곳에 아브라함은 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창 12: 8), 이곳이 하나님의 거룩한 땅이요 하나님의 소유임을 선포하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단을 쌓고(창 12:6-7)), 엎드려 경배 하였습니다(창 17: 3). 가나안 땅에서 이교도에 의해 우상에게 바쳐진 제사가 왜곡되고 변질된 것이라면, 아브라함의 단은 믿음으로 드린, 하나님을 향한 예배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이끄시고 그곳에서 믿음의 제사를 드리게 함으로써, 가나안의 이교도들에 의해 왜곡된 예배를 회복시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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