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님이 쓰신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라는 책에 이런 시가 나옵니다: “벼랑 끝으로 오세요.  사람들이 대답했다. 무서워요. 벼랑 끝으로 오세요.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다가갔다. 그는 그들을 밀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날아 올랐다.” 벼랑은 무섭지만, 두려움을 무릅쓰고 막상 뛰어 내리면, 더 높이 비상할 수 있는 날개를 만들어 주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19세기 영국의 평론가이자 역사가였던 토마스 칼라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역경은 인간으로서 견뎌내기 힘든 상대이다. 그러나 역경을 견뎌내는 사람이 백 명이라면, 번영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에 불과하다.” 고난이 아무리 힘든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고난이 아니라 번영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고난은 우리를 더 강인하게 만들어 주는 우군이지만, 번영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적군이라는 뜻입니다.

     그와 관련하여, 한국에서 나무 전문가로 알려진 우종영씨는  자신의 책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빨리 하늘 높이 자라서 멋진 그늘을 만드는 나무를 사람들은 좋아한다. 그러나 빨리 자라서 크게 가지를 뻗는 나무일수록 그 속은 단단하지 못하다. 성장하고 꽃피우는 데 모든 걸 소모한 나머지, 내실을 다질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무들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몰라도 생명이 다하고 나면 흔적없이 사라지고 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난을 싫어합니다. 번영과 성장과 발전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한결같이 고난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고난이 진짜 영광을 만드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고난의 풀무를 통과해야 한다며 이런 말씀을 주십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7-18).

     고난 없이 주어지는 영광은 없습니다. 있다면, 가짜든지 우리를 무너뜨리는 함정입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평생 고난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1세기의 C. S. 루이스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지금은 은퇴한 팀 켈러 목사님은 자신의 아버지가 생애 마지막 순간에 얼마나 극심한 고통의 시간을 보냈는지 생생히 기억하고 자신의 책에서 이런 일화를 소개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급성 담낭염, 담낭 농종, 그리고 극성 좌골 신경통을 한꺼번에 앓았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병실을 찾아 온 친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나에게는 어째서 이런 견디기 힘든 고통이 한꺼번에 그것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일까?” 그러자 아버지의 친구가 이런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계속 남겨 두시는 건 우리가 아직 주위 사람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뜻이겠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그 누구보다 큰 고통을 당하셨으니, 우리 역시 그분을 위해, 그분에 비하면 작은 아픔을 감내해야 할 때가 있지 않겠나. 그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하늘나라에 가면, 이 세상의 모든 괴로움은 다 치유될 걸세.” 친구의 말을 들은 팀 켈러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신앙을 일깨웠고, 그리고 새로운 신앙의 힘으로 마지막 날들을 더 강하고 정결하게 주님 안에서 지내다가 하나님께로 갔습니다. (『Waliking with God through Pain and Suffering』, Timothy Keller」)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은 얼마나 큰 고난의 시간들 속에 있어 보셨습니까? 혹시, 현재 고난 속에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까지 그리 큰 고난을 경험해 보지 못하셨습니까? 그리스도인이든지 아니든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고난을 경험합니다. 고난을 객관화하여 그 크기를 함부로 단정할 수 없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고난을 어떤 자세로 맞느냐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이 가져다 주는 면류관을 정말 경험하느냐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고난을 맞이하는 입장에 있든지, 고난 속에 있든지, 고난이 주는 유익 다음으로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 고난이 우리가 내려야 하는 결정을 위한 최종적인 신뢰의 대상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고난은 우리를 연단하고 영광의 길로 이끄는 도구는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가 내리는 결정의 표준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우리가 내려야 하는 모든 결정의 진정한 표준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와 관련하여, 성경학자 존 허치슨 박사는 자신의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고통에 대한 우리의 느낌이 중요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최종 결정을 내릴 때 신뢰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Thinking Right When Things Go Wrong: Biblical Wisdom for Surviving Tough Times』 John C. Hutchison)

     현재 당신은 어떤 상황 속에 있습니까? 그 상황 속에서 당신이 내리는 모든 결정의 최종 신뢰 대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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