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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성경 그리고 분별 (1)
박준형 칼럼니스트  |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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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8  04: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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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권위에 대하여!

성경에는 모든 답이 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다, 라고 믿는 이들에게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유일한 도구요, 창이요, 권위요, 진리가 된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간증, 성령의 인도하심이나 신앙의 전통 안에서 행해지는 세례,성만찬 등의 전례나 영적인 지도 등은 부수적이거나 무시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감히 누가 대적할 수 있다는 말인가?

성경은 총 66권의 책, 약 백만 자 이상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성경이 만들어지기까지 천오백 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구약에 이어 27권의 신약은 약 반세기만에 다 만들어졌다. 그 중 첫 4권은 예수님에 관한 것이다. 초기 사도들의 행적을 담은 사도행전과 사도들의 서신서 21권,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적은, 초대교회들을 위한 권면의 책인 요한계시록이 있다. 이 모든 책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인간들의 삶과 변화와 구원을 다룬다.

인간들의 손으로 쓰여진 성경의 모든 말씀은 디모데후서 3:16-17에서 언급하듯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인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다.” 그렇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프랑스와 까생제나-트레베디가 『말씀의 불꽃』(분도출판사, 2002)에서 말하듯이, 하나님께선 몸소 감동을 주신 성경의 외부에, 성경과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 안에서 호흡하고 계시고, 하나님의 영은 오늘날에도 성경 안에 거주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적할 여타의 신앙적인 권위는 있을 수 없다. 성경만이 객관적인 기준이며, 성경만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제공한다(딤후 3:15).

성경은 단지 문자만의 총합이 아니다. 박물관 한쪽에 처박혀 있는 한물간 고문서가 아니다. 일백만 자가 넘는 성경의 말들은 단지 관상용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히 4:12). 살아 있는 성경은, 성령을 통해 대단히 기능적으로 우리와 소통하고,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하나님의 미션에, 영광에 참예하도록 이끈다.

또한 성경의 이야기와 가르침들은 과학 이전의 시대에 쓰여졌지만, 지구가 둥글고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도 여전히 진리를 밝히는 우리의 길잡이가 된다. 낙태가 허용되고 죽음에 관한 어려운 질문들이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생명의 존엄을 강조하는 성경의 권위는 여전히 살아 숨쉰다. 과학적 연구와 사회과학과 의학 등이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기보다는 오히려 성경의 의도하는 바를 더욱 확실히 밝히고 그것을 현명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다! 성경의 말씀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다.

성경은, 캐나다 밴쿠버 리젠트 칼리지의 제임스 패커(James I. Packer) 교수가 그의 책 『하나님을 심각하게 여겨라(Take God Seriously)』(Crossway, 2013)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고갈되지 않는, 예수 중심의, 구원으로 향하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다.”

성경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 자체의 권위로서만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므로’ 성경을 받아들이는 자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주 예수께 온전히 헌신하는 제자가 되도록 이끈다. 물론 이러도록 돕는 자는 성령이시다. 따라서 성경을 이해하고, 성경의 문자가 살아 있는 삶으로 표현되고, 분별의 구체적인 기준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필요하다. 지난 수천 년간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그러셨듯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혀지고 학습되고 믿어진 성경은 수많은 이들에게 삶의 분별의 기준이 되어왔다.

비토르 카파치오의 연구하는 아우구스티누스, 1502 (그림 출터-위키피디아)

가톨릭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개신교인들도 가장 많이 언급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은 그의 고백록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거듭나기 전 그의 삶은 엉망이었다. 문란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정원을 거닐다가 어린 아이의 음성을 듣는다. “집어 들고 읽으라!” 그는 그것이 성경인 줄 알았는지, 자신의 성경을 집어 들고 읽었다.“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 그의 마음은 즉시 그리스도에 대한 회심으로 가득 찼고 모든 의심의 그림자가 사라져버렸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성자였던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회심도 성경에 의존한다. 그는 아시시에 있는 산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었다. “내 집이 허물어지고 있다. 내 집을 보수하라!” 그는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고, 아버지 상점의 옷감들을 시장에 내다팔았다. 이런 이유로 아버지와 결별하게 되고, 상속권을 포기했으며,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만을 아버지라 부르겠다고 다짐하고 가난한 삶으로 들어간다.

시골리의 프란치스코, 1699

이런 와중에 그는 베르나르도라는 부유하고 젊은 법조인을 만나게 되었고, 이 둘은 성 니콜라스 성당에서 성경을 세 번 펼쳤는데, 마태복음 19:21(“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누가복음 9:3(“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그리고 마태복음 16:24(“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말씀이었다. 이 말씀들은 너무나 분명해서 분별할 필요도 없었다. 프란치스코는 이 말씀대로 살았고, 이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수도회를 만들었고, 이 수도회는 오늘날의 ‘작은 형제회’가 되었다.

내가 속해 있는 캐나다의 메노나이트 교회는 가톨릭 교회에서 행해온 유아세례는 ‘성경에 없는 교리’라는 확신으로 16세기 가톨릭에서 나와 시작한 개신교 재세례파의 후손이다). 재세례파는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으며(성경에 없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 자신들의 의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일 때 참된 세례를 베푼다.

루터가 이야기한 ‘오직 성경(Sola Scriptura)’만으로 판단하고 살기로 작정한 재세례파들은 성경에 없는 유아세례를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존의 고착화된 종교구조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종교혁명을 부르짖었다는 이유만으로, 근본적(radical)으로 성경적인 삶과 예수중심의 제자도를 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존의 가톨릭과 동시대의 ‘위로부터의’ 개혁자들인 루터와 칼뱅으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그 박해의 결과는 종교개혁의 시기인 1524년부터 1660년까지 약 4,011명의 순교자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4백 년이 지났지만 이들 재세례파의 성경적인 삶은 여전히 퇴색하지 않고 있다.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이들은 여전히 지독히 성경말씀대로 살고 있다.

아, 성경 그리고 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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