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로 읽는 아가서 강해(1)

“솔로몬의 아가라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아가서 1:1-4).

아가서 1장 4절의 일절은 여인 술람미가 솔로몬에게 사랑의 유도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말입니다. 술람미가 솔로몬의 왕궁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말입니다. 사랑으로 자신을 이끌어달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완전한 신뢰입니다. 그러기에 술람미는 솔로몬에게 사랑으로 의탁합니다. 자신을 인도해달라고 간청합니다. 그가 자기를 붙잡아 주기를 간청하는 것입니다. 그의 손길에 붙잡힌 바 되면 안전할 것입니다. 행복할 것입니다. 술람미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사실 그리스도인의 예수님에 대한 간청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주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주님의 인도를 간청하지 않을 수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실존임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남편 혹은 아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당신 없는 날들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있음으로 내가 있음이니 나는 당신으로 인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계심으로 자신이 존재함을 믿습니다. 그리스도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사랑의 인도를 날마다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사랑의 인도만이 가장 완전한 삶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용서가 있고 회복이 있으며 채우심이 있어 늘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십자가로 유도하셨습니다. 그가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 구원으로 유도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이지만 우리에게는 치유와 회복, 그리고 영원한 자녀 됨으로 우리를 유도하는 사랑의 실체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우리를 새 생명으로 유도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내 십자가는 짐이 아니라 삶입니다. 날마다 짊어져도 지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이미 다 짊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삶을 짐으로 여기는 사람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곤하고 지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인도 없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안에는 지혜와 화목과 겸손이 있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도가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십자가로 유도하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엄청난 축복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의 줄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다고 했습니다(호세아 11:4). 음란한 고멜을 향한 호세아의 끈질긴 사랑은, 인간의 끝없는 반역에도 지칠 줄 모르는 하나님 사랑의 영원성을 상징합니다. 주님은 그의 사랑의 줄로 우리를 묶어 왕의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십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위로함이라”(예레미야 31:3). 그러기에 십자가는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생명줄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의 사랑은 가장 잘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에서 주님의 사랑을 가장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구원도 없습니다. 물론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습니다.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삶에 있어서, 십자가는 더 이상 짐이 아니라 사랑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에 의하여 유도되는 그런 삶은 십자가를 결코 부인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성령으로 우리들을 인도하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는 우리의 가장 절친한 친구로서,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영으로, 우리 자신에게 구체적으로 개입하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진리의 영이 내주하는 자는 참된 자유자입니다(로마서 8:15-16). 우리는 그분을 떠나 자유할 수 없습니다. 그분을 떠나면 우리는 자유를 잃습니다. 자유를 잃으면 자신에게 속박되고 죄악에 속박당해 방종한 자가 됩니다. 아무도 주님의 영을 떠나 자유할 수 없습니다.

여인 술람미가 솔로몬의 사랑에 유도되어 그의 침궁으로 들기를 간청한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인도되어 그분의 침소로 들여지기를 간청해야 합니다. 더 이상 십자가를 거부하지 말고“나를 십자가의 길로 인도하소서!”라고 간청해야 합니다.

우주와 만물이 각자의 자리에서 질서를 유지하도록 인력이 이끌어 주는 것처럼, 우리들의 실존적 삶의 질서가 파괴되지 않는 것은 주님의 사랑의 끈이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의 줄에 매여 있는 사랑의 포로입니다. 노도광풍 몰아치는 칠흑 같은 망망대해 속에서 태산 같은 파도에 곤두박질치던 한 사람이, 자기를 묶고 있는 모선과 연결된 줄을 끊어 스스로 자유하기를 원하는 것은 죽음으로 스스로를 내모는 자살이기에, 주님의 사랑의 줄로 자신을 묶어 “사랑으로 나를 이끄소서!”라고 간청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지독한 지성의 혼란 속에서 주의 영이 내 안에 거하시도록 내면의 지성소를 열어 드려야 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20)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열면 주님을 만나고, 눈을 열면 그의 기이한 말씀의 법을 깨닫고(시편 119:18),  입을 넓게 열면 복을 받습니다(시편 81:10).

닫힌 마음은 어둡고 곤합니다. 닫힌 눈은 진리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닫힌 입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 내면의 지성소를 열어 그의 영이 거하시게 하면 그의 영은 우리를 주님의 지성소로 인도하십니다. 무언가에 의해 닫힌 당신 내면의 지성소를 열고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오셔서 좌정하시옵소서!”라고 간청해야 합니다.

(* 편집자 주 : 이종남 목사의 아가서 강해집『사랑 I, II, III』중 일부를 발췌, 이번호부터 연재한다.“아가서는 이 시대를 향한  진정한 사랑의 메시지다. 현대인들은 이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잃어버린 진정한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라고 이 목사는 말한다. 이 목사는 고신대학원,  New Life Bible College, Moorland Bible College에서 공부했고, 경신여고 교목, 기독교전도대학 교수, 금평교회 담임목사로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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