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시대 5개 제사의 의미는 오늘날에도 유효해"

 

지난호에 소개한 번제에 이어, 이번호에는 모세시대의 5대 제사 중 나머지 제사들을 살펴 본다.

소제

레위기 2장에 나오는 소제는 다른 제사와 달리 짐승이 아닌 곡물이 제물이었다. 그래서 ‘희다’라는 뜻의 소(素)를 쓰고, 영어로 associated cereal offerings 또는 grain offerings이라고 한다. 간혹 과일 바구니를 같이 드렸고, 짐승의 피 대신 포도주를 제단 앞에 뿌리기도 했다.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이 언약의 주이신 여호와께 속죄에 대해 감사하고, 율법에 대해 순종하고 헌신한다는 의미에서 소제를 드렸다. 번제 후에는 항상 소제를 드린다는 원칙이 있었다. 하나님이 번제를 통해 죄를 용서해 주시므로, 제사 드리는 자는 소제를 통해 감사와 헌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소제를 dedication offering이라고도 한다.

신명기 26:1-15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첫 소산을 감사와 헌신으로 하나님께 드린 소제에 대한 가이드가 잘 나와 있다. 오늘날의 예배에서 소제를 찾는다면,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고, 공급하심에 감사하며, 헌신의 증표로 드리는 헌금이 소제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또한 로마서 12:1-2, 고전 6:20에서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우리 자신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이 소제의 의미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겠다.

속죄제
 
번제가 하나님과 예배자 간에 화해를 가져옴으로써 재헌신의 기회를 제공했다면, 속죄제(레위기 4:1-5:13, 6:24-30)는 피 뿌리는 의식으로 죄로 더러워진 성소 또는 성전을 정결케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지속적으로 임하시는 통로가 되었다.

속죄제(The Purification Offering) 는 부지중에 혹은 실수로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이기도 했다. 또한 속건제와 달리 배상할 수 없는 범죄를 용서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였다. 예를 들어 부정한 들짐승의 죽은 시체를 만졌을 때라든가 악행을 생각했을 경우, 증언 거부와 같은 특정한 죄를 지었을 경우에 속죄제가 요구되었다.

속죄제의 특징은 대제사장, 온 회중, 족장, 평민 등 사회적 신분에 따라 제사를 다르게 드렸다는 것이다. 제사장이 범죄한 경우에는 가장 비싸고 흠없는 수송아지를 드려야 했고, 일반 백성은 흠 없는 암염소나 어린 암양,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 고운 곡물 가루를 속죄 제물로 드렸다. 그러나 속죄제물의 크기를 막론하고 흠이 없는 것이어야 했는데, 이는 장차 허물과 죄가 없으신 영원한 제물 되실 메시야를 암시한다.

속죄제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수송아지의 가죽과 고기와 머리와 다리와 내장과 변, 곧 수송아지 전부를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에 가져다가 나무 위의 불로 사르게 했다. 구약에서 진 밖은 저주 받은 자가 버려지는 곳으로, 이 역시 장차 오실 메시야 수난의 죽음을 상징한다고 할 것이다.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브리서 13:11-12).

제사장들의 경우, 속죄하는 사람은 한 손을 동물의 머리에 대고 죄를 고백하고, 다른 한 손으로 그 동물을 죽였다. 제사장은 그 피를 받아서 일부를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리고, 다른 일부를 제단의 향뿔에 문지르면서 기도했다. 나머지 피는 높은 제단의 기반에다 부었다. 일반인들의 경우, 피를 높은 제단의 뿔들에 담고, 나머지는 제단에 뿌렸다. 가난한 자들이 드린 새나 곡물 이삭의 경우에는 의식이 간단했다. 직급이 높을수록 절차가 더 복잡하여 죄의 무거움이 더 크게 느껴지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누가 제사를 드리든, 제사 없는 죄 고백은 완성된 것이 아니었고, 죄 고백 없는 제사는 의미가 없었다. 신약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셨고,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가는 담력을 얻게 하셨다(요 1:29-34, 고후 5:21, 요한일서 1:7-9, 히 10:19).

속건제

속건제(The Reparation Offering)는 개인적으로 회개에 대해 합당한 열매가 필요한 제사이다. 진정한 회개를 위해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과정이 필요한데, 속건제가 속죄제에 이어서 행해졌던 이유이다(레위기 5:15-6:7, 7:1-6).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친구의 물건을 훔쳤거나 사기를 쳤을 경우, 원금을 배상하고 더해서 원금의 20%를 벌금으로 성소에 내야 했다. 하나님의 것을 범한 사람 역시 원 가치와 벌금을 더해 배상해야 했다. 이와 같이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진정한 회개의 증거가 제사 드리기 전에 있어야 속건제의 의미가 있었다.

흠 없는 숫양이나 어린양을 제물로 하여 화목제와 동일한 의식을 행했다. 속죄제와 달리 속건제는 개인적인 제사였다. 배상과 속건제를 통해 죄책감이 사라지고 피해자와 화해했다. 신약에서도 주님은 예배하기 전에 형제와 우선 화해하고 오라고 말씀하신다(마 5:23-24).

신약적 의미에서의 속건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이다. 우리 죄의 대가를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이었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청산해야 할 죄를 예수님께서 갚아 주셨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한다. 또한 진정한 회개로 이웃에게 입힌 피해를 보상하는 것이 신약적인 의미의 속건제라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가해자에게 세 번 용서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는데, 베드로가 그 숫자에 대해 고민했는지 좀 더 보태어 일곱 번 용서하면 되느냐고 예수님께 묻는다. 예수님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며, 용서에 제한이 없음을 말씀하신다(마 18:21-22). 성경은 진정한 회개와 함께 용서를 말씀한다(마 6:14-15, 18:35, 막 11:25, 눅 6:37). 진정한 회개가 선함이 없는 자신을 보며 애통하는 과정이라면, 진정한 용서 역시 가해자의 죄만이 아니라 선함이 없는 자신을 깨닫는 과정이라 하겠다.

화목제

화목제(Peace Offering)는 한 마디로 하나님과의 식사라고 말하고 싶다(출 24:5, 11). 속죄제, 속건제, 번제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위한 희생 제사였지만,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제사였다. 예배자들은 다른 제사들에서 제물을 취할 수 없었으나, 화목제의 경우, 기름과 내장을 태워 하나님께 바치고, 가죽과 일부분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제사장에게 주고, 나머지를 함께 먹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화목제를 fellowship offering이라고 한다.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것에서 하나님과의 화목과 연합이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신약에서의 화목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주님의 만찬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주님의 만찬에는 하늘나라 성소에서의 영원한 성찬에 대한 종말론적 기대가 담겨 있다(마 26:29).

모세에게 5개의 제사와 성막 건립을 명하신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배의 시작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을 통한 인류의 구속사에서 하나님은 구원도, 예배도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하도록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모세 시대의 5대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지만, 제사에 담긴 의미는 오늘도 유효하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