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태어난 집에서 평생토록 살다가 그 집에서 늙어 죽는 사람들도 꽤 많다. 옛날 옛적에는 대부분이 그랬다. 어렸을 때만 해도 그런 사람들을 자주 만났다. 특히 농사짓는 시골에는 더 많았다. 특히 큰아들은 몇 대조 할아버지께서 사신 그 집에 살았다.

그러다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특히 6.25사변이 터지면서 한반도 전체가 뒤죽박죽되었다. 그리고 집들이 폭격을 맞아 앙상한 재만 남게 되었다. 집이 폭격 맞으면서 목숨 잃은 사람들도 무척 많았다. 

그런데 그 같은 전쟁을 겪으면서 뼈아프게 깨달은 것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책을 많이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피난길에서는 책이 가장 무겁고 또 별로 쓸모가 없었다. 피난 시절에 대학교수들조차 양식이 없어 쫄쫄 굶어야 했다. 학교가 문을 닫게 되니 피난 짐 속에 끙끙거리며 끌고 온 책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몇 푼이라도 살림에 보태려고 시장에 내어놓았지만 사는 이가 없었다. 

그런 판국에도 책 한 권을 꼭꼭 움켜쥐고 피난 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도 꽤 두꺼운 책이었다. 성경이었다. 물론 예수쟁이들이었다. 어떤 군인이 전쟁터에서 앞주머니에 넣은 성경에 총알이 맞아 살아남게 되었다는 간증도 있었다. 그래서 성경은 바로 생명을 살려 주는 책이었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그런 찬송가가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게 믿는 것은 아니다. 성경이라는 책이 이 세상에 있는 줄 모르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다. 전혀 읽지 않은 사람들이 지구 위에 몇 줄이라도 읽은 사람 수보다 더 많을 것 같다. 성경에 대하여 반감을 갖고 증오의 화살을 쏘아대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성경은 아편 곧 마약 그릇이라고 공산주의자들이 선언했다. 한때 공산주의 국가가 이 지구의 3분의 2를 점령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은 성경의 씨를 말리려 했다. 그러나 100년을 못 견디고 공산국가가 해체되고 말았다. 그리고 성경을 박멸하려던 국가에서 성경이 제일 많이 보급되고 있다. 이 무슨 조화인가.

아니다. 아무런 조화도 아니다. 북한 땅에서도 그런 일이 돌연히 나타날 수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실 때 실상은 성경도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에 성경은 유대인의 경전에서 ‘온 인류를 구원해낼 언약서’로 부활했다. 그래서 하는 말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바로 ‘걸어 다니시는 성경’ (Jesus is the walking Bible)이라는 선언이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했던 요한 웨슬리 목사에게는 ‘한 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라는 별칭이 붙어 다닌다. 무슨 책을 읽으면 좋겠느냐고 자문을 구하는 사람에게,  ‘책이라면 오직 이 책 한 권뿐이지요. 바로 이 책을 읽으십시오.’ 하고 손에 들고 있는 성경을 번쩍 들어올렸다. 어거스틴, 루터, 칼뱅, 웨슬리, 빌리 그래함 같은 믿음의 모범생들이 모두 한 책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성경 말씀 그대로 살려고 십자가에 목숨을 걸었던 믿음의 영웅들이었다. 

(대표저서: 목회자의 최고표준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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