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이 기독교의 진리를 증명하는 최고의 방법"

지난 1월 27일은 홀로코스트 추모일이었다. 1백만 명 이상이 희생된 아우슈비츠 해방 74주년을 맞아 유대인 강제수용소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다.

그날 오후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 카운티의 할머니 집에서 다코타 테리엇이 체포되었다. 21살로 알려진 그는 26일 여자 친구와 그녀의 아버지, 남동생 그리고 자신의 부모를 살해했다.

25일에는 브라질에서 광산 댐이 붕괴돼 58명이 사망하고 300여 명이 실종되었다. 27일 오전 월 스트리트 저널은 댐 붕괴로 쏟아져 내린 토사가 축구장을 여섯 번 이상 채울 분량이었다고 보도했다.

ISIS는 27일, 주일 미사 중에 필리핀 가톨릭교회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를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두 차례의 폭탄 공격으로 최소 20명이 사망했다.

회의주의자들은 종종 기독교가 세상에서 하는 역할이 자신들의 것과 다를 게 없다고 말하곤 한다. 우리의 하나님께서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고칠 수 없다면, 그분을 향한 믿음이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마르크스의 주장대로 종교는 그저 ‘민중의 아편’에 불과한 것인가? 실제로 종교는 우리의 진보적인 세상에 합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한가?

카렌 펜스(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부인)와 같은 크리스천들은 문화가 적대적으로 반응하는 성경적 도덕을 따를 것을 선택했다. “종교는 위험하다”라는 움직임은 지난 수년 간 가속화되었다. 리차드 도킨스나 샘 해리스와 같은 비판자들은 종교가 시대에 뒤떨어지고 부적절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종교가 비행기를 건물 속으로 날려보내 9/11 사태를 일으켰다는 말을 우리는 듣는다. 종교가 성직자의 성추행 스캔들을 일으키고 사람보다는 건물에 수십억 달러를 소비한다는 말을 듣는다. 종교는 동성애혐오자이고 인종주의자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다면 무신론적인 공산주의는 전 세계 1억 명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는데, 이에 대해 우리는 리차드 도킨스나 샘 해리스를 비난해야 할까?

초기 크리스천들은 로마의 황제와 신들을 숭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단 취급을 받았다. 예수의 ‘피와 살’을 먹는다고 식인 행위로, 형제자매로서 서로를 사랑한다고 근친상간으로, 기적을 일으킨다고 마법사로 기소되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

하지만 순교자 유스티누스, 아테나고라스와 터툴리안과 같은 옹호자들은 크리스천들의 신앙을 합리적으로 변호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들은 크리스천들의 삶과 일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아테나고라스는 “말로 교리의 유익을 증명할 수 없을 때에도 크리스천들은 행위로 진리를 따르는 유익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유스티누스는 크리스천들이 로마제국의 “선한 질서를 수호하는 최고의 협력자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크리스천들이 세금을 내며(마 22:15-22), 심지어 예배 중에 황제를 위해 기도한다(디모데전서 2:1-2)고 강조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이 기독교의 진리를 증명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예를 들어 세상은 동성애에 관한 성경 말씀을 따른다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크리스천들이 에이즈 퇴치를 위해 일할 때 세상은 우리를 주목할 것이다. 회의주의자들이 위험하다며 우리의 신앙을 없애려 해도, 역사적으로 크리스천들이 교육, 건강, 복지, 아동 보호와 약자 돌돔에 헌신해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이 망가질수록 우리의 신앙은 더욱 합당해진다. 당신과 내가 세상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는 긍정적인 방식을 찾아낼 때, 우리는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며, 그 아래 앉아 보지 못할 나무를 심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우리의 믿음”(요일 5:4)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영원한 승리는 분명하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해 죽임을 당하게 되는”(로마서 8:36) 것이 사실일지 모르나, “이 모든 일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로마서 8:37)는 것 또한 사실이다.

(* 편집자 주 - 문화사역자 짐 데니슨 박사의 1월 27일 칼럼 발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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