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짙은 부추에 해물을 잔뜩 넣은 부추해물전이 노릇하게 침샘을 자극하며 프라이팬에서 나올 준비를 한다. 화려하고 먹음직스럽게 부추해물전이 담긴 접시는 다음 것이 나오기도 전에 바닥을 보인다.

금요일 저녁마다 부추해물전을 해먹기 시작한 것은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추억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매주 금요일이면 집으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미리 준비해 둔 재료를 가지고 부추해물전을 부쳐드리면, 시어머니께선 고령임에도 두쪽을 거뜬히 잡수시곤 했다.

시집 와서 시부모님과 함께한 세월이 친정 부모님과 함께한 세월보다 더 길다. 그만큼 시부모님과 함께한 희노애락도 많다. 시어머니의 생활 습관, 말투까지 내 삶 속에 많이 스며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가끔씩 놀라곤 한다. 막내며느리라고 워낙 아껴 주셨던 터라, 가끔씩 그리움에 목이 멘다.

며칠 전 큰애가 할머니 얘기를 하며, 할머니가 살아계시면 용돈을 많이 드릴 수 있을 텐데 하며 아쉬워 했다. 큰애의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해서 할머니 생신에  $20 드린 것을 시어머니께서 쓰지 못하고 성경책 갈피에 넣어 두신 걸 기억하는 모양이다. 큰애가 약혼을 한 뒤 약혼녀와 함께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가서 인사했을 만큼 두 분은 손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돌아가신 지 3년이나 되었건만, 추억은 더욱 또렷해지고 말씀하신 것들, 즐기시던 음식들이 자꾸 생각나서 그리움이 더해진다. 시어머니는 내 인생 학교의 스승 중 한 분이셨다. 요즘 부쩍 나도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시어머니처럼 늙어 보려고 노력한다.  아낌없이 주시던 그리운 분!

시어머니를 추억하는데 성경의 제자들이 생각난다.  3년을 한결같이 예수님을 따랐던 그들에게 스승이신 예수님의 부재는 잠시 그들을 우왕좌왕하게 했지만, 곧 그분과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 그분이 하신 말씀들, 드신 음식들, 하신 행동들을 기억해 성경 말씀을 기록했을 제자들을 생각해 본다.

누군가 돌아가셔서 눈에 안 보이면 잊혀질 것 같은데, 인생에 영향력을 준 사람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것 같다. 아니 더욱 선명해지는것 같다. 성경을 읽을 때 그런 의심을 했더랬다.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신 뒤, 제자들이 기억을 더듬어 쓴 성경이 과연 흠이 없을까? 이제는 이해한다. 때론 같이 있을 때보다 더 뚜렷한 기억이 있다는걸. 물론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이 전체를 이끄셨다는 걸 안다.

제자들도 무척이나 그들의 선생이 그리웠을 것 같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분이 하셨던 언행들을 하나씩 따라해 보면서 그리움 속에서 그분을 만나곤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시어머니를 추억하는것처럼.

책 읽는 취미를 가지고 계셨던 시어머니는 성경을 몇독씩 하셨는데, 말년에 눈이 안 보여 성경을 못 읽게 된 것을 아쉬워 하셨다. 대신 성경 말씀을 생활 속에서 활용하심으로 성경을 읽으셨다. 몸으로 읽는 성경! 비록 온전치는 않았지만 삶의 많은 부분에서 시어머니는 성경 말씀이셨다. 특히 시어머니의 "비움"의 자세는 정말 놀라웠다.

이제 나는 어떻게 늙을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 선배되신 시어머니가 계시니까. 그분처럼 성경 말씀을 내 삶으로 살아보고 싶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 속에 "자유 "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 내 삶이 예배가 되고, 내가 드리는 예배가 곧 내 삶이 되길 소원해 보면서 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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