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가 돌아가듯 반복적인 일상으로부터의 이탈은 설렘을 갖게 했다. 그날의 이탈은 평소보다 두 시간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둠이 짙은 이른 새벽, 북쪽 캘리포니아 99번 하이웨이를 달렸다. 늘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바쁜 길이었지만, 이른 새벽엔 모르는 길처럼 낯설었다. 차들이 없는 고속도로는 한산했고, 하늘은 별빛으로 부산했다. 두꺼운 어둠에서 지켜주려는 듯, 나를 태운 차는 두 눈을 불끈 뜨고 달렸다.

얼마를 달렸을까! 켈리포니아의 수도인 새크라멘토에 가까워졌다. 도로 중앙에 환한 등을 켜두고 공사를 알리는 오렌지콘들이 네 개의 차선 중 두 차선을 막고 있었다. 차량의 왕래가 덜한 깊은 밤을 택한 길 공사가 여명과 함께 끝나는 시간이었다. 일꾼들이 천천히 움직이는 트럭 위에다 늘어 놓았던 오렌지콘을 올려 싣고 있었다. 밤 세워 일한 그들의 수고가 고마웠고, 어둠 속에서 만난 빛과 사람들이 무척 반가웠다.

그들이 들을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큰소리로 외쳤다. “하이! 굿모닝!!!” 내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 들어왔다. 기분이 좋아졌다. 엔진 소리뿐이었던 차안을 흔드는 내 목소리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역시 이탈은 기쁨이었다.

밝은 불빛을 뒤로하고 나아갔다. 어둠 속에서 막 깨어나고 있는 하늘을 만났다. 태어나는 하루의 하늘은 약간의 녹색기가 도는 깊은 회색이었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사물이 제법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시간에 땅과 하늘에 있는 모든 존재가 인정을 받는 듯했다. 먼 산은 하늘과 땅을 가르는 선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나무, 건물들은 뭉글한 실루엣으로 드러나게 했으며. 어둠 속의 주인공이었던 가로등의 불빛까지 존중히 여기는 듯 빛을 잃지 않게 했다. 불빛을 앞세우고 달리던 큰 차, 작은 차의 윤곽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시간의 지휘에 따라 온갖 물체들은 악기가 되어 아침 악장을 연주하는 중이었다. 서로의 모습을 세워주며 자기의 몫을 성실히 감당하는 합창. 그렇게 느껴졌다.

나의 삶을 이루는 모든 요소와 경험, 감정들도 막힘이나 감춤 없이 한꺼번에 드러나는 시간은 없을까? 그것들도 이른 아침의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곧 사라질 별빛이 짙은 회색빛 하늘 위에 올랐어도 어색하지 않은 아침의 하모니. 그 별에게 햇빛 속에서 푹 쉬었다가 이따 밤에 만나자는 인사를 마음으로 전했다.

99번을 벗어나 도심의 중앙을 가로질러 동서로 누워 있는 50번을 타고 동쪽을 향해 달렸다.

아직도 밤에 가까운 하늘이었다. 그러나 어둠이 서서히 정복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50번의 어느 지점. 도로가 경사졌다. 오르막에 올라서자 시야가 탁 트였다. 아득히 시에라 산맥 위에는 백사장 저쪽 바다 끝으로 몰려버린 썰물처럼, 아랫목에 밀린 이불처럼, 진한 구름이 덮여 있었다. 그 구름은 분명 밤의 편인 듯, 기세등등하게 전진하는 아침을 붙잡고 있었다.

 

구름 이불의 방해를 이기고 어느새 맑은 녹색으로 단장한 하늘은 별을 대신하여 실구름을 가끔씩 펼쳐 놓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깨어나서 바쁘게 변화하는 아침. 아침의 주인이신 하나님, 그 속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게 모든 감각을 허락하신 멋진 하나님께 가슴 벅찬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잠시 후, 멀리 산맥 위를 덮은 진회색 구름의 작은 부분이 놀랍게도 손톱 끝에서 빛나던 봉숭아물빛마냥 빨갛게 물들었다. 드디어 해가 등장하려는 조짐이었다.

신비한 아침하늘의 변화에 놀라고 있는 나의 눈앞에 더 놀라운 풍경이 연출되었다. 그 손톱 만한 빛의 흐름은 위로 올라갈수록 각이 벌어져 손전등에서 나오는 불빛처럼 퍼져 나왔다. 금세 변해 연두색을 띠고 있는 하늘 위에 놓여 있는 하얀 실구름을 비추었다. 양 옆으로 펴진 두 가닥의 실구름에게!!! 그 빛을 받은 구름은 순식간에 진한 분홍빛이 되어버렸다.

양쪽으로 펼쳐진 진분홍의 두 실구름, 그리고 저 아래 산맥을 덮은 구름 중의 빨간부분은 하늘 위에다 한 폭의 그림을 만들었다.

 

밝은 연두색의 화폭에 크게 그려진 ‘진분홍 스마일 마크’

 

놀라운 하늘 엽서를 생전 처음 본 내 가슴은 두근거렸다. 눈에선 감동의 눈물이 고였다, 입이 함빡 벌어졌다. 운전대에서 오른손을 떼었다. 가만히 위로 들었다. 하늘 엽서에게 손을 흔들기 위해서였다. 여전히 나를 향해 분홍빛 눈웃음을 보내는 하늘!!! 그 아침 하늘의 눈길이 나를 향했음을 확신했다.

일상을 잠시 이탈하는 일은 설렘이다. 길이 끊긴 듯 굽어진 신록의 오솔길, 휘돌아 보이지 않는 그곳을 상상하며 걷는 즐거움은 크다. 그날 아침의 이탈이 준 설렘은 큰 행복으로 이어졌다. 하늘이 특별히 만든 아침 인사가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아침 엽서는 곧 내 안에 안착해 버렸다. 지금도 가끔 나를 향해 익살맞은 분홍빛 실눈으로 웃으며 피어나곤 한다. 지쳐서 휘청거릴 때 받쳐 주는 힘을 대동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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