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아가서 2:3).

기능적으로만 보면 입은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체 기관이다. 말로써 의사 소통을 하고, 음식을 먹음으로써 영양을 흡수한다. 아가서 2:3에서 솔로몬은 어여쁜 입, 홍색 실 같은 입술이 아름답다면서 술람미를 예찬했다. 내면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입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것이다.

인간의 심층적인 내면은 인체의 다양한 기능들을 통해 표현되는데, 그 중 입은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입은 곧 말이고 말은 그 사람의 심층적 내면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표현의 실체가 된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롬 10:10)고 말했다.

입에 그 사람의 마음이 있다고 했다(롬 10:6). 말씀이 마음에 있다고 하지 않고 입에 있다고 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입에 있는 것은 곧, 그 마음에 있는 것이고, 마음에 있는 것은 곧, 입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롬 10:6-8).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 마음으로 믿는 믿음을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예수를 구주로 시인한 입술의 고백이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입술의 고백으로, 마음으로 믿는 믿음이 사실로 확증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솔로몬이 술람미의 입이나 입술을 “홍색 실 같고 아름답다”고 예찬한 것은 궁극적으로 술람미의 마음을 찬양한 것이다. 홍색 실 같은 입술은 아름다운 입이고, 술람미의 그 아름다운 입은 바로 그녀의 마음이라는 뜻이다. 입의 기능적 역할을 더 강조한 다른 번역은 “너의 입술”을 “너의 말(your speech)”이라고 했다. 성경의 다른 쓰임새를 검토해 보면 입이 더 적절한 번역이다.

홍색 실 같은 입술, 아름다운 입은 솔로몬이 사랑한 여인 술람미의 인상(image)이다. 솔로몬은 단순히 술람미의 입이나 입술만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술람미의 확증된 아름다운 마음을 본 것이다. 그녀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외적 기능을 가진 신체의 입과 입술을 통해 시각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면을 보지 않으신다. 내면을 보신다.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창 6:5). 그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외형을 꾸미는 것으로는 완전해질 수 없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내면을 보신다.

술람미의 입술은 붉은 빛깔이다. 창백한 입술이 아니라 핏빛 어린 붉은 입술이다. 붉은 입술은 신체의 건강과 내면의 생명감을 보여 주는 거울이다. 마음을 보여 주는 입술의 고백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그러므로 고백은 언제나 진실해야 하고, 입술의 고백은 믿을 수 있는 마음의 고백이어야 한다. 마음의 진실 그대로 붉고 아름다운 입술의 고백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유제물이므로, 그 입술의 고백 또한 그 영혼의 영원한 절개여야 한다.(롬 10:10, 마 16:16, 요 6:68-69, 행 4:19,  5:29)

사랑은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가 입으로 사랑을 말할 때, 마음을 드러낸 입술의 고백이어야 한다. 주를 떠나지 않겠다는 마음이어야 하고,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해달라는 애원이어야 하고(시 51편), 기생 라합의 생명을 걸고 지키는 약속이어야 하며(수 2:8-11),  수가성 여인의 “와 보라!”는 증언이어야 하고(요 4:28-29), 증인으로서의 바울의 증언이어야 한다(행 16:31).

상대적 가치들이 판치는 세속적인 세상에서 너무 쉽게 사랑을 말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사랑이 절대책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절대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사람을 상대적 가치로 만드는 대신에, 생명을 걸고 그 사랑을 지킨다. 하나님이 그러셨듯이 우리도 그래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다르다. 두 마음으로 하는 사랑이 아니며(시 12:2), 남을 훼방하는 사랑도 아니다(딛 2:2). 사랑하면 추하고 어리석은 말, 희롱의 말을 하지 않는다(엡 5:4). 평화와 덕을 세우고, 오래 참음과 감동이 있어 여러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어야 한다(잠 10:21).

사랑은 입술로 보여진다. 눈에 보이는 입술로 증명되는 마음의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찬송이기도 하다(행 16:24-25).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입술의 자원제물이다(시 119:108). 사랑을 말하는 입술일수록 관리되어야 하는 것은 사랑의 진정성이 향유처럼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입술은 몰약향낭처럼 진정 아름답다.

믿음으로 관리되지 않는 입은, 세상의 가치관에 따른 갈등의 트라우마를 걸러내지 않은 채 자학적으로 파괴하는 입술이 된다. 결국 사랑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독설적인 도구가 되는 것이다. 입이 사랑을 파괴하는 원수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직한 입이 되도록 관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살면서 갈등의 내적 트라우마를 믿음으로 풀어내지 못하면 결국 믿음을 잃게 되고, 믿음을 잃어버린 마음은 홍색 실 같은 입술을 살인무기로 변질시킨다. 내면의 믿음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 주는 그리스도인의 입술은 솔로몬이 술람미의 입과 입술을 예찬한 그 아름다움만큼 진정한 사랑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사랑한다고 말하는 만큼 사랑이어야 하고, 그리스도를 증언함에 있어 정직하고 진지해야 한다. 입으로 사랑을 말하지만 사랑이 아닌 것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진정한 사랑인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보다 우선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사랑에 대한 세상적인 가치관에 함몰되어 자학적인 삶을 살아가던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고 증언한 것처럼, 우리의 믿음을 증거하는 입술도 홍색 실 같은 사랑이어야 한다(요 4:27-30, 39-42).

(* 편집자 주 : 이종남 목사의 아가서 강해집『사랑 I, II, III』일부를 발췌, 연재한다.“아가서는 이 시대를 향한  사랑의 메시지다. 현대인들은 이 메시지를 듣고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라고 이 목사는 말한다. 이 목사는 고신대학원,  New Life Bible College, Moorland Bible College에서 공부했고, 경신여고 교목, 기독교전도대학 교수, 금평교회 담임목사로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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