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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희망을 붙잡고'인생에 대해 긍정적이면 아름다운 인생을 더 많이 경험해'
정길영 목사  |  여의도순복음강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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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26  00: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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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 박사는 자신의 신학을 ‘희망의 신학’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17살 때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습니다. 그는 독일 군인으로 징집되어 전쟁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었습니다. 영국의 포로 수용소에서 극도의 좌절과 모욕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태어난 함부르크가 폭격으로 폐허가 되고 가족들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심한 절망에 빠졌습니다.

몰트만 박사는 더 이상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자살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느 목사가 준 성경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는 중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왔는데, 세상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많은 이들에게 선을 베푸셨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셨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입은 자들이 오히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몰아쳤습니다. 또 가장 가까이서 주님을 섬긴 제자들도 모두 도망쳐 버렸습니다. 예수께서는 가장 외롭고 처절하게 버림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몰트만 박사는 이 장면을 보고 자신의 절망과 동질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으신 지 사흘 만에 사망과 음부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몰트만 박사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캄캄한 절망에서 부활의 승리를 가지고 일어나는 예수님을 보면서 ‘나에게도 부활이 있을 수 있구나, 나의 가슴속에 그리스도를 모시면 절망에서 일어날 수 있고, 파멸된 우리나라와 고향도 부활할 수 있고, 잃어버린 가족이 부활의 생명을 얻어 다시 가족을 이룰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박사의 ‘희망의 신학’은 이러한 상황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만이 부활을 주실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포로 수용소에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캄캄한 절망이 부활로 말미암아 빛으로 변화되어 더 이상 어두움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희망에로 부름을 받았다고 그는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유도,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 이유도 하나님이 주신 희망 때문이며, 그 희망을 향하여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희망은 진리의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해준다고 그는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망 가운데 살던 우리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원래 교회라는 말에는 부름 받은 자, 또는 뽑힌 사람들의 무리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망 속에 살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생명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근심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평안히 넘치는 곳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만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인생은 고통스러운 얼굴, 찡그리는 얼굴, 분노하는 얼굴, 눈물을 흘리는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환하게 미소 짓는 얼굴, 아름다운 얼굴, 신비스런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수많은 얼굴들을 바라보는 내 자신의 마음 자세입니다. 고통스러운 얼굴에 초점을 맞춰 바라보는가, 아니면 아름다운 얼굴에 초점을 맞춰 바라보는가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인생의 아름다운 얼굴에 초점을 맞춰 바라볼 수 있을까요? 우리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분들이 대체로 인생을 긍정적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갑니다. 이런 생각이 현실의 씨앗이 됩니다. 인생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이면 아름다운 인생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반대로 부정적이면 고통스런 인생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절망은 치명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희망은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희망은 시련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고, 난관을 극복하게 해주고, 승리의 길로 인도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우리의 희망을 새롭게 해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희망을 품고, 희망 가운데 살아가도록 만드십니다. 그러기에 어떤 상황에 있든지 희망을 붙잡아야 합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된 병자가 누워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먼저 물어보셨습니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병든 자가 낫기를 원하는 것은 정한 이치인데 왜 예수님은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요? 아마도 그 병자의 마음속에서 희망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낫고자 하는 희망을 그에게 심어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일어나서 너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순간 그의 병이 깨끗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살다 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문제부터 개인의 고통에 이르기까지 힘들 때가 많을 것입니다. 사실 인생은 돈이 없거나 몸이 약해서 망하지 않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리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희망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새롭게 도전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면서 우리의 걸음걸음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해야 합니다. 십자가 고난의 언덕이 보이고 고통스러운 죽음이 보이고, 침묵의 무덤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예수님의 부활을 붙잡고 일어서야 합니다. 봄이 되면 들에 새싹이 돋고 나무마다 새순이 나오듯이 우리 영혼의 깊은 곳에서 희망의 싹이 돋아나야 합니다. 새 봄에 다시 희망을 붙잡고 새 출발을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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