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서 독일의 뒤셀도르프는 동쪽으로 357마일 떨어져 있다.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는 북쪽으로 403마일 떨어져 있다. 뒤셀도르프 행 비행기를 타고 에딘버러에 내릴 것이라 생각하는 승객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3월 25일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

브리티시 에어웨이 3271편을 운영하는 항공회사의 서류 작업 실수로 비행기가 엉뚱한 곳에 착륙한 것이다. 승객들만 빼고, 승무원, 기내 서비스 담당 직원, 관제탑 모두 에딘버러에 가는 줄 알고 있었다.

이렇듯 우리는 진실하면서 잘못될 수 있다. 오늘날 진실하면서 잘못되는 길들이 참 많다. 동성결혼 지지자들은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종교적이고, 도덕적이고, 성경적인 자유가 타당하지 않거나 잘못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낙태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주장은 단순하고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영국 항공이 보여 주듯이, 진실하면서 동시에 잘못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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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뉴스들을 통해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초특급 부자들을 위한 수중 호텔과 식당이 생겨나고 있다. 몰디브의 한 해저 빌라는 1일 객실요금이 5만 달러이다. 핵 공격과 기타 재앙을 막아 준다는 “억만장자의 벙커”도 세계 곳곳에서 세워지고 있다.

그러나 부자들의 세계가 잘 돌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블룸버그 뉴스에 따르면, 개인용 혹은 영업용 제트기 사용자들에 대한 비용 청구서 사기가 늘고 있다. 미국 검찰과 FBI는 지난 8년 간 2,500만 달러 규모의 입시 비리 스캔들에 연루된 50명을 적발했다.

2억7천3백만 달러의 잭팟에 당첨된 남자(53세)의 전 부인은 자신이 소송할 것이라는 전 남편의 말을 부인하면서, “나는 아무 것도 안할 것이다. 내게는 도덕이 있다. 나는 내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결혼 후 15년 간 직장에 다녔으며, 지난해 가을, 실직 상태에 있던 남편과 이혼했다. 이혼 후 그녀는 계속 배우자 부양비를 지불해 왔다.

뉴욕 타임스에 실린, “지금은 인간적 접촉이 고급 상품이다”라는 제목의 글에 의하면, 부자들은 웰빙을 위한 인간적 교류의 중요성을 깨닫고, 테크놀로지나 상품 구매보다 고급 여행이나 식사 등에 돈을 더 많이 쓰고 있다.

우리가 진지하게 소유가 행복을 가져다 줄 거라고 생각할지라도, 분명히 소유는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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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진공 상태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와 로마에서 비롯된 서구 문명을 이어받았다. 그리스도 탄생 전 수세기의 가치관은 몸으로부터 영혼을 분리시켜, 영혼은 선하고, 몸은 악하다고 규정했다. 이로 인해 수세기 동안 크리스천들은 세속을 떠나는 것이 영성의 최고 형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둘째, 우리는 문화적 선조로부터 종교와 “실세계”의 분열을 이어받았다. 세상과 공조하는 종교는 하나님을 설득하면 원하는 일을 해주실 것이라고 가르친다. “주일에 교회 가면 하나님은 월요일에 당신을 축복해 주실 것이다.”가 오늘날 공식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두 세계, 종교적인 세계와 세속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세 번째 견해가 우리 문화 속에서 빠르게 번져가고 있다. 혼이나 초현실적 존재는 없으며, 따라서 오직 물질에만 초점을 맞출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인구의 23.1%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가톨릭 신자(23%)들이나 복음주의자(22.5%)들보다 조금 더 많다. 이러한 견해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과 연결시키고자 하는 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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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잠언을 공부하는 중에 잠언 11장이 오늘의 주제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혜의 사람 솔로몬이 우리에게 경고한다.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4절). 솔로몬은 덧붙인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28절).

우리가 물질적인 부를 신뢰하지 않아야 한다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 물질적인 세상과 연결되는 걸까?

*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패역한 세상을 축복하실 수 있도록 우리는 의로워야 한다.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11절).

* 우리는 이웃에게 성경적 지혜를 제공하게 되어 있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14절).

* 우리는 모두에게 관대하게 되어 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24절).

간단히 말해, 우리는 영혼을 위하여 물질을, 영원을 위하여 일시적인 것을 사용하게 되어 있다. 예수님을 모르는 이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신성을 거부하고, 성경의 진리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비성경적인 믿음에 진지할 것이다. 그들이 진지하게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들 스스로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를 모른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우리의 전도와 선교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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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작가이자 연사인 벤 말콤슨은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 시절에 대학 신문인 데일리 트로얀의 기자였다. 경기장에서 생생한 소식을 전하고 싶었던 그는 2006년 선수로서 미식 축구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었고, 시즌이 끝난 뒤에는 USC 축구 온라인 미디어의 디렉터가 되었으며, 이후 주요 매체들에 기여하는 작가가 되었다.

27일, 벤 말콤슨은 폭스 뉴스를 통해 지나날을 회상했다. “팀에 합류하기로 결정된 순간, 나를 통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바로 전도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팀의 동료들이 주님을 만나도록 돕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이지 몰랐다. 성경 공부를 시작했으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기도 모임을 만들었지만 아무도 동참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동료들의 라커룸에 동료 숫자 만큼의 성경책들을 비치해 두었지만, 이틀 후 라커룸에 갔을 때, 찢기고 구겨진 성경책들을 발견한 말콤슨은 상심했다.

4년 후, 시애틀 시호크스의 피트 캐롤 코치의 보조로 일하고 있을 때, 말콤슨은 옛 친구를 만났다. 옛 친구는 당시 한 선수가 성경책을 집었고 사망하기 사흘 전에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소식을 들려 주었다.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없었던 순간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하고 계셨다”라고 말콤슨은 결론지었다. 오늘 당신은 벤 말콤슨의 본을 따를 의향이 있는가?

(* 편집자 주 - 문화사역자 짐 데니슨 박사의 3월 28일 칼럼 발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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