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콩밥을 좋아한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 야릇한 미소를 지을지도 모르겠다.

가을날, 하늘은 푸르고 따사로운 햇볕은 모든 이를 넉넉하게 만들어 준다. 황금빛 들녘에서 아버지의 가을 추수를 거들며 논둑길에 앉아 어머니가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온 새참을 먹을 때, 검정콩이나 밤콩을 한 줌 넣고 지은 콩밥은 먹어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알 수 있다. 입안에서 밥과 콩이 버무려져 씹을수록 달고 고소한 콩밥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나는 콩밥을 즐겨 먹지 못하고 있다. 우리 네 식구 중 나 혼자만 콩밥을 좋아하는 꼴이 되고 보니 응당 콩밥을 먹을 기회가 적다. 그나마 고향집에라도 가야 어머니께서 손수 지어 주신 그 콩밥 맛을 만끽할 수 있다.

콩 중에서도 두렁콩이라는 콩이 있다. 두렁콩은 늦은 봄 모내기를 마치고 무논에서 어린모가 막 뿌리를 내리고 자랄 즈음,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후쯤 하루를 잡아 어머니와 나는 논두렁을 돌며 군데군데 곡괭이로 작은 구덩이를 파고 거기 재 한 줌과 밤콩 서너 알을 심었다. 그리고 대여섯 달이 지나면 자주 돌보지 않았어도 두렁콩은 따순 햇볕과 알맞은 수분, 아니 그보다는 낮으론 앞산의 뻐꾸기 울음소리와 저녁으론 쏙독새 울음소릴 들으며 콩깍지 속에서 튼실하게 콩이 여문다. 모든 가을걷이가 끝나갈 무렵 두렁콩을 거두어 마당 구석에 쌓아 놓았다가 막바지 가을볕이 따사로운 날, 콩 동이를 풀어 헤쳐 아버지의 도리깨질이 시작된다. 두렁콩은 사정없이 두들겨 맞아도 즐거운 듯 타닥타닥 그 야무진 얼굴을 세상에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만다. 마당 복판에 수북이 쌓인 두렁콩을 한 되 두 되 됫박에 쓸어 담는 어머니의 보람을 나는 익히 엿보았던 터이다.

콩은 밭에서 나는 쇠고기로 일컬을 만큼 고단백 식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콩을 예찬하는 또 다른 까닭이 있다. 오래 전 건강 서적으로 베스트셀러였던 일본인 하루야마 시게오의 저서 『뇌내혁명(腦內革命』이란 책에선 콩이야말로 유일한(?) 건강 필수식품이라고 강력하게 추천하고 있다. 저자는 일본의 전통의학과 서양의학을 겸비한 치료 시스템으로 탁월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데 건강을 위하여 매끼 콩밥은 물론이고 콩이 함유된 부식을 권장하고 있다. 이를테면 두부나 된장 등이 바로 그 것이다.

‘콩을 사용한 식품은 아미노산 밸런스가 뛰어나 뇌내 모르핀의 재료로 가장 적합하다. 특히 쌀밥과 콩을 곁들이면 쌀에 부족한 아미노산은 콩이 함유하고 있고, 콩에 부족한 아미노산은 쌀이 함유하고 있어 결점을 상호보완하여 최고의 아미노산 밸런스를 이룬다…’ 고 그 책에는 기록되어 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모두가 건강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적절한 운동과 절제된 생활 습관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질병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렇듯 나는 콩에 대한 애틋한 추억과 뚜렷한 주관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내 직업과 관련하여 못내 콩에 대한 오해가 있지 싶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것은 바로 ‘콩밥’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다.

원래 ‘콩밥’이란 은어는 자신의 죄과로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수용자들이 먹는 주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개인적인 판단이긴 하지만, 일제시대나 해방 직후 우리나라 수용자들의 급식 형편은 열악했던지라 그나마 모자라는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하여 자구책으로 주식에 콩을 섞어 주기 시작한 것이 발단이 된 듯하다. 그리고 출소하는 사람들에게 계란이나 두부를 먹게 하는 이유도 사실은 이 영양 상태와 관련된 절박한 이유에서일 터인데, 요즘은 웬일인지 출소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계란과 두부를 발로 으깨도록 하는 악습으로 변질된 것 같아 여간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게 아니다. 차라리 그런 상서롭지 못한 겉치레보다 사랑과 용서의 표현으로 한동안 뜨겁게 안아 주는 모습이 보기에도 좋다.

얘길 하다 보니 콩밥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 감이 있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콩밥을 좋아한다. 더구나 교도관이다보니 더러 수용자들과 식탁에 마주 앉을 때가 있다. 수용자들의 식생활이 개선되어 ‘콩밥’이 없어진 지 이미 이십 년도 넘어 한낱 추억거리가 되고 말았지만 나는 점잖게 그들과 벗하며 ‘너희가 콩밥을 아느냐’고 즐겁게 농담을 하기도 한다. (한국수필작가회 제32집 ‘그때 그 낯선 곳에서의 기억’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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