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꼬꾸랑 할머니는 점심을 잘 드시고 집에서 좀 쉬신다고 가시더니 좀 있다가 다시 오셔서는 몸이 안 좋다며 힘없이 주저앉으셨다. 열이 났고 안색이 창백해지셨다.

매주 주일예배가 끝나면 나는 아이들과 함께 시어머니 댁에 가서 같이 식사를 하곤 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꼬꾸랑 할머니는 시어머니 댁에 놀러와 계셨다. 두 분이 늘 가까이 지내시는 터라, 우리는 한 식구처럼 같이 식사를 하곤 했다. 할머니는 걸으실 때마다 허리가 심하게 구부러지고, 마치 네 발로 걷는 것처럼 보여서, 사람들은 그분을 꼬꾸랑 할머니라고 불렀다.

할머니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큰아들이 장로로 섬기는 교회로 연락을 했더니 아이들을 위한 행사를 진행하는 중이라 바꿔 줄 수 없다고 했다. 할머니가 많이 아프셔서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는데도, 곧 행사가 끝나니 그때 말씀 드리겠다는 거였다.

그러나 더 지체할 수가 없어서 911 앰뷸런스를 불러 할머니를 응급실로 모시고 갔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다행히 할머니는 며칠 입원해 계시다가 퇴원하셨다. 감기 바이러스로 인한 심한 복통이 문제였다고 한다. 할머니의 큰아들이 교회 시무장로였기에 행사에 꼭 참석해야 했겠지만, 할머니의 상태도 위급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 암 수술을 받고, 수술 후에도 치료를 받느라 고생하신 박 권사님은 자식들 고생시키게 될까봐 정말 열심히 운동도 하시고 식단도 조절하셔서 웬만큼 건강을 회복하셨다. 그런데 성질이 고약해 평생 박 권사님 마음고생을 시켰지만, 치료 받는 동안에는 군말 없이 병상을 지키며 궂은 일을 마다 않던 남편이 얼마 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충격을 받은 박 권사님은 마음이 영 가라앉질 않는다고 하셨다.

평생 마음고생 시킨 것을 한꺼번에 갚기로 작정하셨는지, 박 권사님을 위해 헌신하시더니, 할 일이 다 끝났다는 듯이 남편이 허무하게 가버려서 외롭다고 하신다.

이민자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박 권사님도 미국에 와서 갖은 고생을 다하며 남매를 키우셨다. 그리 악착같이 사시면서도, 박 권사님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믿음 안에서 남매를 키우셨다. 그 덕분에 결혼한 아들, 딸 내외가 믿음 생활을 잘하는 것이 늘 고맙다던 박 권사님의 심경에 요즘 변화가 왔다.

건강할 때에는 늘 교회가 우선이던 권사님도 병들고 남편 떠나고 나니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다고 하셨다. 혹시나 아들, 딸 내외가 온다고 전화할까봐, 주일이면 전화기를 손에서 놓질 못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통 얼굴 보기가 어렵다고 하신다.

뭔 교회일이 그리 바쁜지...

 

삼) 플라스틱 백을 좀 달라는 안젤라에게 무얼 하려느냐고 물으니, 동네 입구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지저분해서 집에 들어가는 길에 좀 주우려고 한단다. 그녀는 늘 주변의 필요를 살피고 돌보는 게 몸에 배어 있는 것 같다. 연로하신 시부모님께도 따뜻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모습은 요즘 보기 드문 일이어서 살짝 놀랍다. 그뿐 아니라 몸이 불편해서 생활이 넉넉지 않은 시동생 네도 여러 모로 보살핀다.

여름철 찜통 같은 세탁소 안에서 땀으로 목욕을 하는 우리 부부도 늘 마음으로 배려했다.

가끔 그런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무료 서비스를 좀 해줄라치면 펄쩍 뛰며 사양한다. 이렇게 우리 부부가 힘들게 일하는 덕분에 자기는 편하게 혜택을 받는다고 말한다. 얼마 전 그녀가 내 손을 잡고 웃으며 던진 한 마디가 의미심장하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 사람들, 즉 배우자나 자녀, 부모나 형제, 그리고 이웃들을 잘 챙기기만 해도 세상은 훨씬 살 만해질 거예요.” 지혜롭고 현명하고 착한 안젤라를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본다.

사) 벌써 15년도 넘은 일인가보다. 몸이 좋지 않아 검사를 받았는데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수술 날짜를 잡고, 상상도 못한 수술만 기다리는데 참으로 모든 게 막막하기만 했다. 보험도 없는데 이렇게 큰 수술을 받게 되었으니 병원비를 어떻게 해결하지? 가게는  또 어떻게 하지? 남편 혼자서는 너무 힘들 텐데? 아이들 밥은 누가 해주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무 일도 못하고 손 놓고 있는데, 남편은 다른 걱정은 하지도 않고 오직 내 병이 낫기만을 바랐다. 남편은 그 힘든 일을 하면서도 새벽기도를 쉬지 않았다.

우리 부부의 세탁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어와나 클럽(Awana Club)이라는 이름의 기독교 아동교육기관이 있다. 어와나 클럽의 직원 여러분들은 세탁소의 단골손님들이다. 그들 중에는 대표와 임원들도 있다. 남편이 그분들에게 내 수술 이야기를 했더니, 같이 기도하겠다면서 병명, 수술 날짜, 수술 의사, 병원비 문제 등등 고민하던 문제들을 일일이 종이에 적어 갔다고 한다. 일주일에 두 번 보드 미팅을 할 때 기도하겠다고 약속했단다.

교회나 주변 이웃들 중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기독교인들은 습관적으로 “기도할게요.” 혹은 “기도합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그분들은 계속해서 수술 경과와 병원비 문제 등을 꼼꼼히 체크하며, 도움 줄 방법을 함께 고민해 주어서 남편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우리 부부도 다른 이들의 기도 부탁을 한 번도 소홀히 여긴 적이 없다. 한 달 가량 요양한 다음 일터로 돌아온 나를 반갑게 맞아 주고, “다시 돌아와 줘서 고맙다.”며 대표 부부는 우리 부부에게 저녁식사까지 대접했다.  그들의 사랑과 기도를 통해, 또 다른 하나님의 사랑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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