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고등학교 학생회장이었다. 시골에 있는 학교인데 학생이 모두 합해 280명 정도 되었다. 돈 있는 집 아이들은 대부분 서울, 인천, 수원에 있는 명문 고등학교로 갔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는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찌질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나 역시 소작농의 아들이었다. 부모님은 남의 토지를 임대하여 농사를 짓고 타작해서 지주에게 보내고 남는 것으로 살림했다.

그래도 공부라면 늘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중학교 때부터 교회에 다니는 까닭에 학생회 임원회 등도 큰 문제 없이 이끌어 갔다. 교회에 다니면서 첫 번 받은 큰 은혜가 바로 ‘알곡 학생’이 되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래서 알곡학생회장이 되기로 또 한 번 결심했다.

회장 임기가 끝날 무렵이었다. 학교 안팎에서 동맹 휴학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물 끓듯 했다. 교장 선생님이 비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간고사 치르는 학생들 가운데 학비를 못 냈다고 시험을 못 보게 했다. 그리고 교실에서 내쫓았다. 책가방 메고 눈물 닦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학생회장인 나도 그 중 하나였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도 교회의 남자 권사였다.

학생회장은 학생회 임원과 반장들을 모아 비밀회의를 열었다. 교장 선생님에게 항의하기 위하여 동맹 휴학을 주도했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모두 아침에 학교에 왔다가 종소리를 신호로 해서 결의문 낭독 후 일제히 집으로 돌아갔다. 학교가 닷새 동안 텅 비었다.

그로 인하여 학생회장은 퇴학처분을 받았다. 경찰서에 끌려가서 밤샘 조사도 받았고 유치장 신세도 졌다. 그러나 동기가 순수하다는 판정을 받고 풀려났다. 그래도 학교에는 갈 수 없었다. 퇴학 처분을 받았기 때문이다.

충격을 받은 사람은 누구보다도 어머니였다. 홀모로서 아들이 공부 잘하고, 모범생이고, 신앙생활 잘하는 것으로 위로받던 어머니였다. 어느 날 새벽에는 비가 너무 내려서 방 윗목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셨다.

“하나님 아버지, 이 과부를 불쌍히 보시고, 아들 정근이를 꼭 다시 살려 주세요. 예수님도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잖습니까. 그 애를 살려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알곡 같은 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그런 기도를 하시면서 목 놓아 우셨다. “간절히, 간절히”라고 하실 때에는 내 간이 저려왔다. 누워서 이 기도를 낱낱이 듣고 있던 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렇다. 검정고시를 쳐서라도 꼭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리라.’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말에 퇴학 처분을 받았다. 2학기는 집에 있어야 했다. 그리고 졸업식 직전에 복학 통지를 받았다. 퇴학을 정학으로 바꾸고 졸업만 시킨다는 것이다.

나는 서울대학교에 입학원서를 냈다. 낙방해도 명문대를 떨어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당당히 합격했다. 하나님은 퇴학처분으로 죽은 나를  8개월 만에 부활시켜 주셨다. 십자틀 위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던 그분께서....

(대표 저서: 『목회자의 최고표준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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