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과 따르던 군중은 패닉 상태에 있었다. 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성에 입성만 하면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터라, 그가 맥없이 십자가의 형틀에 매달려 허무하게 죽어가는 모습에 그들은 실망과 좌절 속에 모두 흩어져 허둥대기만 했다. 수제자라던 베드로마저 그리스도를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심지어 저주(막 14:71)까지 했을 때 다른 제자들과 따르던 군중은 낙심천만하여 흩어져 버렸다.

더구나 소수의 남은 제자들을 추스려야 할 베드로가 실의에 빠져“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요 21:3)면서 옛날 어부로 돌아가려고 하자, 남은 자들은“우리도 함께 가겠다”며 따라나섰다. 그들은 옛 솜씨를 발휘해 밤새껏 바다에서 사투를 벌였으나 기대하던 고기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새벽에 빈 그물만 챙기는 또 다른 절망을 겪어야 했다.

그들은 지난 3년 간 예수를 따라다니며 온갖 초인적이고 초자연적인 이적과 기사들을 보았고 친히 경험했으나, 막상 예수가 떠나자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해 무기력한 자연인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유일한 호구지책이었던 바다에서도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빈 손으로 돌아서야 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였던 일, 떡 일곱 개와 생선 두어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던 때(막 8:1-21)를 상상에서만 떠올리며, 그들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이제야말로 절망과 좌절의 막다른 벽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절망 속에 있던 그들이 갑자기 천사의 말을 기억해 냈을까?“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만(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생각났을까?“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

위기는 바로 기회라고 했던가? 예수님께서는 당장 먹고 입고 살아갈 방법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핍박에 대해선 말씀이 없으셨으나, 천하를 정복할 수 있는 복음과 권능을 성령과 함께 주셨다. 눈에 보이거나 손에 쥘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제자들에게 어디서부터인지 새 힘이 돋으며, 새로운 도약을 위해 생명까지 아끼지 아니하는 용기와 능력이 솟아오른 것이다.

사탄의 간교로 인한 십자가 사건으로 좌절의 위기에 처해 절망한 제자들은, 천국 복음을 전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즉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요 4:34), 바로 그 사역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좌절의 위기는 영적인 전쟁에서 온 것이기에, 인간이 소유한 힘이나 무기로는 막을 수 없다. 오직 초자연적인 능력만이 이러한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다. 예수님의 사역에 쓰임받는 제자들이나 사역자들은 인간의 힘이 아닌 성령의 도우심으로 초자연적이고 강력한 권능을  받아야만 비로소 싸움에 임할 수 있다. 따라서 제자들에게 우선 필요했던, 바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라는 전제가 있어야 새로운 도약을 기대할 수 있다.

금일에도 믿는 자들은 때때로 위기와 절망 속에서 헤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혜로운 신자들은 이때가 새로운 도약의 기회라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아무리 큰 고난이 닥쳐와도,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음을 믿고, 그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하며 노력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손에 쥔 것이나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용기를 내어 새로운 도약을 위해 전진하는 지혜를 발휘한다. 이토록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신자됨이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가!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을 받은 제자들의 삶이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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