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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것은 동산에서 함께 먹는 것수필로 읽는 아가서 강해(6)
이종남 목사  |  도서출판 서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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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30  04: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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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아가서 4:16b).

잠근 동산에서 신랑신부가 나누는 사랑의 희열을 아름답게 묘사한 그림 같은 노래이다. 첫 음절은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이다. 신부가 신랑을 잠근 동산으로 정중하게 초청하는 것이다. 초청의 이유와 목적은 둘째 음절인 “아름다운 실과를 먹기 위해서”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잠근 동산”의 주인 솔로몬을 은유한다. “그 동산(잠근 동산)”은 술람미 자신을 의미하며, 자신이 솔로몬에게 속한 존재임을 은유한다. 술람미는 사랑하는 이를 불러 함께 먹기 위해서 “잠근 동산”으로 초대한다.

잠근 동산은 지상교회를 의미한다.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교회이고, 교회는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다.

부부로 한 몸이 된 솔로몬과 술람미가 잠근 동산에서 아름다운 과일을 먹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죽으심으로 한 몸 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확증된 관계를 은유한다. 교회는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한 공동체이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루는 구원의 공동체가 바로 지상교회이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위해 존재하는 유한적 기관인 지상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없어질 것이다. 심판 주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와 함께 천상교회에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그 아름다운 실과를 함께 먹는 것”은 생명을 나누는 코이노니아, 곧 생명 관계를 의미한다. 교회는 생명을 주신 구주와 그로 인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아름다운 실과를 함께 먹는 공동체이다.

하나님의 구속은 주고받는 거래가 아니다.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어떤 조건을 주고받는 상대적 거래가 아니다. 하나님의 인간 구원은 절대적이다. 인간의 구원은 절대자 하나님의 일방적 결정이고, 그 결정은 절대적이며 영원불변하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죗값을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치러 구원을 성취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하셨다(요 1:12).

믿음 또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당신에게 구원의 확신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하나님의 구원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주신 구원은 믿는 나와 하나님과 생명 관계로 연결된 것이다. 죽음도 이를 끊을 수 없다(롬 8:39).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나와 그리스도의 관계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스스로 주셨음을 믿는 믿음으로 맺은 가장 친밀한 관계이다(갈 2:20).

아가서 4:16b는 사랑으로 하나 된 신랑신부가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소원하는 마음이 담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인다. 신부가 초청하고 신랑이 응답하여 하나 되어 아름다운 실과를 먹는 광경은 곧 구원의 그림이다. 친밀한 교제를 하는 교회의 모습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세상의 비판과 사탄의 공격, 그리고 인간의 잘못된 생각으로 교회의 이미지가 많이 훼손되었지만. 그 본질은 그리스도의 몸이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사람들을 구원으로 부르신다. 교회는 그 부르심에 응답한 영혼들과 아름다운 실과를 먹으며 친밀한 교제를 하여, 지상의 ‘잠근 동산’으로서의 소명을 다해야 한다. 사랑으로 아름다운 실과를 생산하고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이 솟아야 한다.

인간 구원이 아니면 교회가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구원받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전도가 사라진 교회는 더 이상 잠근 동산이 아니다. 친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교제 관계로만 자리한 교회는 그 존재의 본질을 상실한 것이다. “아름다운 실과”는 ‘하나님의 사랑’이고 그것은 곧 ‘복음’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다. 이 아름다운 실과를 부와 건강의 복음으로 위장한다면 교회 스스로 복음의 본질을 변질시키는 것이다.

영혼을 구원시키는 교회야말로 가장 건강하고 가장 부유하다. 돈이나 건강 자체가 물론 악은 아니다. 재물을 신으로 만드는 현대의 맘몬주의가 문제이다. 번영의 복음은 신앙의 목적이 아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기록했다(요삼 2). 이 말씀은 전형적인 인사말인데, 이를 기복적으로 해석하여 물질적 풍요와는 무관한 요한복음의 “풍성한 생명”(요 10:10)을 물질적 풍요와 관련짓는 해석학적 오류를 범한 이들이 있다. 이런 해석은 매우 비성경적이다.

번영의 복음을 주장하는 이들은 ‘가난’과 ‘번영’을 상충적 개념으로 이해하여, 번영을 하나님의 뜻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견해는 성경에서 타락의 본질과 일반 은총의 실재를 고려하지 않은 해석이다.

지나친 소유는 충분함과는 다른 개념이다. 소유는 나눔을 위한 것이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먹는 일이 없느니라”(눅 12:33).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게 된 사람, 곧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할 줄 아는 자족의 사람들이다(빌 4:10-13). 부하려고만 하는 자들은 시험에 빠진다(딤전 6:6-10). 나눔이 진정한 부의 본질이라는 가르침을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깊이 새겨야 한다.

* 편집자 주 : 이종남 목사의 아가서 강해집『사랑 I, II, III』일부를 발췌, 연재한다.“아가서는 이 시대를 향한 사랑의 메시지다. 현대인들은 이 메시지를 듣고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라고 이 목사는 말한다. 이 목사는 고신대학원, New Life Bible College, Moorland Bible College에서 공부했고, 경신여고 교목, 기독교전도대학 교수, 금평교회 담임목사로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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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nlee
육인숙 권사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글쓰기에 감동이 되게 하셔서 힘이납니다.
(2019-05-02 08:38:38)
육인숙
아가서 연재 기사로 볼 수있어 행복합니다ㆍ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 깨닫게
되어 감사드립니다ㆍ

(2019-05-01 21: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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