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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이유
최태선 목사  |  어지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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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14  01: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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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야고보서 1:2-4).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단어는 '기쁨'입니다. 수많은 시험을 통과하며 힘겹게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다지 실감나는 말은 아닙니다. 야고보서 1:2-3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했는데 왜 기뻐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힘겨운 인생살이 전체를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 기쁨은 복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성경은 복음이 주는 기쁨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와 건강의 복음이 약속하는 것보다 귀하고 값진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여러 가지 시험에 대해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외적인 환난과 핍박일 수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일 수 있고, 자신의 욕심에 미혹된 시기와 질투와 다툼일 수 있습니다. 그 무엇이든 시험을 만났을 때, 야고보 사도는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고, 또 그렇게 해야 당연하다고 선언합니다. 그것은 바로 종교, 사회, 문화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면서 로마 변두리에 흩어져 있던 주님의 교회들을 향한 기쁜 소식의 첫 외침이었습니다.

기쁨의 이유

그 답은 3절의 "앎이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기쁨을 발견하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면 기뻐할 수 없습니다. 시험을 당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의 수신자들은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당장의 해결책은 돈이었겠지만, 야고보 사도는 다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여러 가지 시험을 겪더라도 기쁨으로 시험을 넘어설 수 있는 세 가지 이유들을 제시합니다.

1) 살아 있는 믿음

시험이 주는 고통과 아픔, 불안과 좌절을 넘어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첫째 이유는 그들의 믿음이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를 "믿음의 시련"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여기서 시련에 해당하는 '도키미온'은 연단 혹은 검증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도키미온'을 풀어서 설명하면,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는 어떤 본질이 시험과 같은 계기를 통해 그 진정성이 드러나 보다 온전한 모양을 갖추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시험이 오면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불신앙으로 반응할 것입니다. 분노와 절망과 허무와 원망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반면,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시험의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소망의 근거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찾게 되고 그분을 경험하게 됩니다. 입으로 고백했지만 막연했던 믿음이 시험을 통해 자신의 것이 됩니다. 그 믿음만이 가장 믿을 만한 것이며, 가장 놀라운 선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거기에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감춰져 있던 보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한 가운데서도 기뻐해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2) 솟아나는 인내

믿음의 사람은 시험을 당할 때 자신의 믿음이 살아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고, 함께하시며, 적극적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검증받게 됩니다. 이 시련과 연단은 어떤 목적이 이루어지기까지 계속됩니다.

그리고 시험이 주는 시련을 통과할 때 발휘되는 인내는 인간 스스로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인내 스스로 역사하는 그 무엇입니다. 신학적 용어로 견인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인내는 스스로 펼쳐지는무엇인데, 신자는 목적하는 바, 곧 온전한 상태를 향하여 스스로 작동하는 인내로 하여금 그 일을 다하도록 해줄 것을 요구받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에서 '온전히'라는 말은 인내의 궁극적인 목적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인내가 온전히 이루어질 때, 온전함을 얻게 됩니다. 그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4절에서 설명하듯이, 신자에게 있는 믿음은 시험을 만나 진가를 발휘하고 인내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믿음으로부터 시작된 인내는 나름대로의 목적이 그 안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성도가 시험을 만나면 정해진 목적을 온전히 이루는 기나긴 과정을 위해 인내가 적극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신자의 온전함은 인내가 그 작용을 마친 후에 주어지는 결과입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온전함'은 신자의 외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서 오는 무엇이 아닙니다. 인내는 당사자의 허락 없이, 그 사람을 이미 정해진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도록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견인입니다. 이런 인내는 사람의 결단과 의지에서 비롯된 인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땅에 심기는 씨앗 안에는 열매라는 온전한 상태에 대한 계획이 이미 들어 있어서 장기간 변모의 과정을 거쳐 그 모습을 완성하게 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온전함을 목적으로 정하셨습니다.

따라서 인내는 우선적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분이 주신 인내가 우리 안에서 솟아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내합니다. 신자는 자기가 정할 수도 도달할 수도 없는 온전함이라는 목적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는 인내를 통하여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 없는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어도 우리는 지금 그렇게 변화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온전함을 정하셨고 지금 이 불가마 속을 지나가게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솟아나는 인내, 이것이 우리가 기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3) 온전함이라는 선물

복음은 너무나 믿고 싶은 좋은 소식이지만, 그래서 잘 믿어지지 않는 소식입니다. 신자들은 모든 것을 받고도 그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삶이 기쁠 리 없습니다. 모든 것을 받고도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욱 비참하게 살아갑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 점을 지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온전함을 계획하셨습니다. 우리 안에서 인내가 솟아나는 이유는 이 변할 수 없는 목적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기쁜 일입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참을 수 없는 기쁨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드디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 없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온전하다는 말, 구비한다는 말, 그리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하나의 상태를 세 가지 측면에서 강조한 표현입니다. 온전하다는 말은 원래의 목적에 다다랐다는 뜻입니다. 구비하다는 말은 최종적인 원숙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잠재되어 있던 모습들이 완전히 드러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함, 즉 '빠짐'이 없다는 표현은 부정적인 방식으로 온전함의 긍정적인 모습을 강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 받은 새 생명을 키우는 삶을 살아갑니다. 구원은 긴 여정입니다. 그 시작과 과정은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시작은 원래 그 안에 정해진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에 이르는 과정과도 분리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것이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해도 온전히 기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시험 가운데서 자유와 능력을 얻는 길은 하나님의 관점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늘 세상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늘 사람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염려하지만, 하나님께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가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모든 시험의 초점은 우리가 과연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느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우리가 골머리를 앓는 세상이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홍해를 가르는 것도,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는 것도, 이 세상을 다시 창조하시는 일도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세상을 다스릴 온전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담도, 이스라엘도 실패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분 안에서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우리도 그분 안에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 온 세상이 달려 있습니다.

인간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시험은 없어야 할 장애물이자 불행의 원인입니다. 부와 번영의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그러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목표로 삼으신 것을 받아들이고 품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깨닫고 그에 따르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힘들고 어려워도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인내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솟아나는 인내가 있습니다. 그 인내는 주님께서 계획하신 목적에 이를 때까지 계속 솟아날 것입니다. 그 인내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 없는 새로운 생명의 완성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기쁜 삶을 주님께 감사 예물로 드리고 산제사로 드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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