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야고보서 1:5-8).

시험을 당할 때

야고보 사도는 가장 먼저, 시험을 당해도 낙망하지 않고 기뻐할 수 있는 근거들을 제시했습니다. 시험을 당해 힘들지만 실은 그것이 기쁜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시험에 처한 그들 안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온전케 하시는 역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을 통해 인내가 솟아납니다. 인내하는 우리 속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온전함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내일의 우리는 오늘의 우리와 다를 것입니다. 신비한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를 그렇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며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현실은 여전히 버겁습니다. 피조물의 입장에서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의 역사는 너무 높은 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을 겪는 신자의 입장에서 해야 할 일이 있고, 깨달아야 할 일이 있고, 결단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야고보는 이제 시험을 당하고 있는 신자가 해야 할 지침을 말해 줍니다. 야고보 사도는 먼저 지혜에 대해 말하고 그 다음으로 기도를 언급하고 마지막으로 나뉜 마음, 곧 두 마음을 지적합니다.

정말 부족한 것

5절에서 '지혜'가 소개되는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지혜가 부족하거든"에서 부족하다는 말은 바로 4절에서 언급한 부족함의 개념을 이어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부족함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대의 교훈적인 글들에 쓰인 문학적인 기교이기도 합니다.

4절의 부족함은 인내의 결과를 표현하지만 5절의 부족함은 그 결과에 이르기 위한 과정에서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를 가리킵니다. 즉 아무것도 부족함 없는 온전한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인내의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부족함을 채워야 합니다. 시험은 단순히 우리를 어렵게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통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를 드러냅니다. 물론 그 시험과 관련된 사람들의 사악함이나 세상의 잔인함과 허망함 같은 요소들이 총 망라됩니다. 무엇보다 자신 속에 있는 탐욕, 시기, 질투, 헛된 욕망, 부족한 인격, 부족한 믿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야고보 사도는 가장 부족한 것으로 지혜를 꼽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시험을 당하고 있는 믿는 자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지혜라고 지적합니다.

야고보서에서 지혜, 즉 "소피아"는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래서 3장 후반부에서 야고보 사도는 '위로부터 난‘ 지혜와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지혜를 구분합니다(15-18). 수신자들의 상황이 스스로 지혜 있다고 말하고 가르치는 교사들(3:1)에 의해 더욱 분노와 시기와 질투, 다툼과 쟁론, 더 나아가 분쟁에까지 이르는 상황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4장에서 야고보 사도가 강조하는 대로 지혜는 종말의 일들을 분간하고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지혜를 구하라는 이유는 시험을 당하는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시험 가운데 기뻐할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당하면 부족한 것들이 드러납니다. 돈이 없고, 상황이 척박하고, 인격이 부족하고, 실력이 모자랍니다. 하지만 정말 부족한 것은 그 모든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 그분께서 무엇을 하고자 하시는지, 그 의도를 아는 지혜입니다. 그분이 요청하시는 그것을 깨닫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시험을 당해서 기뻐할 수 없습니다. 인내를 기쁨으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실망과 좌절이 깊어질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있다면 문제를 풀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진정한 기쁨이 생깁니다.

지혜

시험을 당할 때 우리는 먼저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말씀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묵상하고 기도하고 자기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어려운 시험을 통해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하나님 역사의 원칙과 도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용서하라고 하시면 용서해야 합니다. 믿고 맡기라시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뛰어내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시험 중의 기도는 해도 좋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도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와 같이 피땀을 흘리며 고민해야 하는 기도입니다. 마침내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따를 때 시험은 더 이상 우리를 힘들게 하지 못하고 물러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온전함을 향해 한 걸음 내딛게 되는 것입니다.

죽을 줄 알았습니다. 그 죽음은 십자가입니다. 정말 죽었습니다. 그러나 죽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죽을 수 없는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이 요구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세상의 저항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죽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지혜, 위로부터 온 지혜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부족한 것은 지혜입니다. 마귀로부터 오는 세상적인 지혜가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복음은 듣기 좋은 음악이 아닙니다. 우리를 부수고 빻아서 고운 입자로 만들어 물을 붓고 치대어 반죽한 후 물레에 돌려 성형을 하고 유약을 바른 후 가마 속에 넣어 빛나는 도자기로 만드는 변화로의 초대입니다. 그 초대에 기꺼이 응하여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지혜가 주는 평화 가운데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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