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남북 사이에 95%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얼마 전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교단 총회에 참석했다. 그때 매우 귀중한 선물 하나를 받았다. '영어-평양말 대역성경'인데, 『하나님의 약속: 예수 후편』이다. 신약성경이란 뜻이다.

30여 년 전에 어렵사리 평양에서 발행한 성경전서를 구입했는데 누군가가 가져가고 돌려주지 않아서 매우 아쉬웠다. 그런데 평양말 번역 신약성경을 선물 받은 것이다. 김현식 교수가 번역했다. 영어성경 NLT를 대본으로 ‘영조 대역’이지만 평양표준어 번역본인 셈이다.

한국말 성경이라면 지금까지 서울표준어로만 읽어 왔는데 북조선 동포들의 언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가슴이 사뭇 뛰었다. 평양은 일찍이 아시아의 예루살렘 아닌가. 그래서 남북 분단 75년 넘어선 지금도 북한복음화를 위해 간이 절이도록 기도하고 있다.

우선 마태복음부터 속독으로 읽기 시작했다. 한국교회 대표번역인 『개역개정판 성경전서』와 대조 분석했다. 눈에 쉽게 들어오는 것이 북조선 말투의 표현들이었다.
례배, 령, 려행, 률법, 리해, 려자, 려관, 려인숙, 로임(삯), 량식, 리익, 렬거, 락타... 국어학에서 말하는 두음법칙이 서울표준말과 다른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예배, 영, 여행, 율법, 이해, 여자, 여관, 여인숙, 노임, 양식, 이익, 열거, 낙타... 서울표준말로는 그렇게 적어야 한다.

한문에 뿌리를 둔 말들이 순수한 한국말로 고쳐진 것들도 꽤 보인다. 비유는 ‘빗댄 이야기’라 했다. 할례는 ‘잘라냄 예식,’ 유월절은 ‘건너뜀 명절,’ 성경은 ‘하나님 말씀책,’ 시험하다는 ‘떠보다,’ 특히 인자(人子)는 ‘사람의 아들’로 과감히 바꾸었다. 서울판이 꼭 참고할 번역들이다.

성경적 관용어를 되도록 평양의 일반 대중언어로 바꾸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사도: 핵심제자, 방언: 알 수 없는 말, 포도주: 포도술, 성전: 신전, 안식일: 은정의 휴식일, 회당: 군중회관, 들보: 통나무, 제자: 학생, 족보: 가계표, 사탄: 마왕/대악마, 옥합: 설화석고단지, 그리스도/메시야: 구세주, 음부: 죽은 자들의 자리, 들보: 통나무...
한문으로 된 말을 되도록 순수한 조선말/평양말로 바꾸려는 노력도 보인다. 방언: 알 수 없는 말, 인치다: 도장찍다, 결례: 깨끗이 씻기 제사, 은사: 영적 선물, 복음: 반가운 소식 등등 훨씬 더 많다. 북조선에서는 한자어를 순수한 한국말로 바꿔 쓰려는 노력이 남한보다 더 강력했다는 증거이다.

북한에서만 사용되는 낱말들이 크게 많지는 않으나 눈에 들어온다. 채소를 남새라 했고, 민중을 군중이라 했다. 보증한다는 말을 ‘담보한다’고 한 것은 꽤 알려져 있다. 간음하다는 말은 ‘부화한다’를 사용했다. 남한 출신들에게는 좀 방언 같기도 하다.

그러나 <평양성경연구소>에서 출판한 『하나님의 약속: 예수 후편』을 읽으면서 아직 남북 사이에 95%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창세기 11장에 기록된 바벨탑 시대처럼 말이 전혀 안 통하는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북한 선교는 매우 희망적이라 확신한다. 북조선 땅에 신앙의 자유가 ‘담보되기만’ 한다면....

(대표 저서: 『목회자의 최고표준 예수 그리스도』)

 

* 편집자 주 - 평양성경연구소가 엮은 영어-평양말 대역 성경인 『하나님의 약속:예수 후편』은 2017년 8월 홍성사에서 출간되었다.

“1960년대 초 북쪽의 언어혁명으로 남북의 언어 환경은 크게 달라졌고 이에 북쪽 사람들이 읽고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성경이 필요해졌다. 현대영어로 다듬어져 급속히 보급되고 있는 NLT(New Living Translation) 성경의 번역저작권을 미국 틴데일사로부터 받은 평양성경연구소는 영어 본문을 평양말로 ‘직역’하여 러시아어에 더 친숙한 북쪽 사람들이 성경 내용과 함께 영어를 습득하는 데 도움을 받도록 하였다.”

“평양성경연구소(PBI)는 2008년 워싱턴 근교의 버지니아에 설립되었으며, 미 연방 국세청과 주 정부에 등록된 비영리단체이다. PBI의 사명은 영어-평양말 대역 성경을 편찬하여 북한 청소년 학생들의 영어 교육에 도움 되는 교재를 개발하는 것이다.”

“PBI 산하 각 분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언어와 문화의 통일을 통한 남북통일과 북한의 복음화를 위해 힘을 모으고 있으며, 특히 영어-평양말 성경 번역과 심의에 참가하는 성원들은 번역의 정확성과 과학성을 보장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 일에는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거나 유학 중인 여러 분야의 사람들 즉 어학, 신학, 법학, 과학 분야의 전문가들과 박사과정의 학생들이 참가하고 있다. 더불어 북한의 복음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미국과 남한의 교계 지도자들, 믿음의 식구들도 PBI 사업에 기도와 후원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개요 일부)

출간 당시의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 성경의 번역 및 심의를 맡은 김현식 교수는 북한의 평양사범대학 교수였으며(1954~1987), 러시아국립사범대에도 교환교수로 재직했다(1988~1991). 1992년 한국으로 망명했으며, 서울 외국어대학 교수로 일했고(1994~1999), 통일정책연구소의 연구 자문으로 일했다(1993~2001). 2001년에는 미국 뉴올리언즈 신학대 방문교수, 2003~2006년에는 예일대 신학대 방문교수, 2006년 이후 조지메이슨대학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영어-평양말 대역성경’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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