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Jenny)는 마침내 좋은 집을 구해 멀리 네이퍼빌로 이사간다. 눈물을 글썽이며 내 손을 잡고 작별인사를 하는 제니를 꼭 안아 주며 복을 빌었다. 제니는 귀엽고 발랄하며, 언제나 해피 바이러스를 주변에 전파시키고, 다람쥐처럼 날렵하게 행동하는 half 한국인이다.

처음 우리 가게에 오던 날, 제니는 서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들어왔다. 우아한 나비를 연상케 하는 귀여운 아가씨였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5년 넘게 우리 가게를 드나들며 정을 나누었는데 이사를 간다니 너무 아쉬웠다. 늘 해왔던 대로 이사 가는 손님들에게 마지막 서비스는 무료라고 하는데도 제니는 막무가내로 돈을 내겠다고 해서 겨우 설득하여 서비스를 마무리했다.

제니가 대학 2학년이었을 때, 제니의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같은 날 돌아가셨다. 졸지에 동생과 둘이 고아가 되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제니의 고달픈 삶은 그녀를 날렵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동생의 손을 잡고 죽을 힘을 다해  살았다. 겨우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지금은 살림만 하게 되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다람쥐같이 빠르다.

부모를 잃고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 왔는지 제니의 손은 거칠고 굳은살이 박혀서 나무토막같이 딱딱하다. 그 손을 만지고 있노라면 가슴이 짠해진다. 하지만 치열한 삶 속에서 터득한 지혜인지는 몰라도 제니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다. 어떤 어두움(아픔, 슬픔)이 있어도 빠르게 빛(기쁨, 행복)으로 전환시키는 묘한 능력이다!

그런 제니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수제비다. 얼마 전에는 수제비를 해먹었다고 자랑하더니, 오늘은 임신한 동생이 수제비를 먹고 싶다고 해서 만들어 주러 간단다. 어릴 때 감기 걸리거나 몸이 아프면 엄마가 해주신 수제비를 먹고 거뜬히 일어나곤 했단다. 사진을 보여 주는데 감자와 호박 등을 넣어 만든 수제비가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수제비는 그녀들만의, 엄마를 추억하는 수단이었다.

엄마랑 손잡고 교회 다니던 시절이 생각날 때마다 제니는 가게에 들러 신앙 얘기를 나누었다. 고달픈 삶 가운데서도 제니의 믿음과 행함을 저울에 올려놓으면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을, 아주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가끔 제니를 통해 청교도 정신을 만나곤 했다.  제니 엄마가 내 나이 또래여서인지 제니는 나를 무척이나 따랐다. 헤어지면 이런 마음도 못 나눌 텐데 하며 아쉬워 하는데, 제니가 내 마음을 안다는 듯이 하나님께서 네이퍼빌에도 아줌마 같은 분을 예비해 주셔서 자기를 외롭지 않게 해주실 거라며 나를 안아 준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네이퍼빌에 옮겨 심으시는 거라고 말했다. 그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고 그 만남 가운데 분명히 복음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거라고 했다. 지금은 헤어짐이 슬프지만,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네이퍼빌에서의 새로운 계획도 기대가 된다고 했다.

제니가 가게를 떠난 뒤,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회상하다가, 문득 핍박 받아 흩어진 초대교회가 생각났다. 그 핍박과 흩어짐은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도록 만든 하나님의 모략이었음을 초대 교인들은 나중에 깨달았을 것이다.

우리들의 만남과 헤어짐 속에도 분명 하나님의 지혜와 모략이 들어 있겠지. 네이퍼빌에서 제니는 여전히 해피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리면서, 주변의 이웃들을 위해 하나님이 옮겨 심으신 작은 예수로 살아 가겠지. 그녀의 인생에 들어온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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