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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목적지
곽성환 목사  |  PMI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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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4  06:2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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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항을 이용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요즈음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항공사 직원을 통하지 않고 전자 시스템을 이용해서 혼자 수속을 밟습니다. 셀폰으로 이미 탑승권을 다운받아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공항에 있는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직접 탑승권을 발급받습니다. 스크린이 안내하는 대로 여행자의 이름, 목적지의 공항명 등을 입력합니다.

나도 주로 그렇게 하는 편인데, 절차를 밟다 보면 꼭 이런 확인 질문이 나옵니다. “여기가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가요?”나는 그 문장을 볼 때마다 잠시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합니다. ‘내 인생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나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가?’

목표, 목적을 이룬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남모르는 보람, 기쁨, 열매를 경험하게 됩니다. 몇 년 전 애틀란타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경비 절감 등의 이유로 애리조나의 피닉스 공항을 경유하는 비행기를 이용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애틀란타에서 날씨로 인해 출발이 늦었습니다. 자연히 피닉스에는 두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고, 결국 다음 연결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항공사에서는 다음 날 비행기를 이용하라고 안내해 주었습니다. 나는 당황했고 대안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알아보아야 했습니다. 다행히 같은 항공사 편중에 시애틀로 가는 비행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습니다. 시애틀이 큰 공항이다보니 운항 편이 많았습니다. 문제는 그 비행기가 밤 12시 넘어 도착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한 성도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자신이 시애틀로 오겠다고 했습니다. 갑작스런 일이고 가깝지 않은 거리인데 선뜻 의욕을 보여 주어서,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조차 잊어버리고 대뜸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우리는 새벽 1시에 공항에서 만났고 다시 밤새 운전하여 포틀랜드로 내려왔습니다. 그분께 대한 감사의 마음이 지금도 가득합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던 이유는 포틀랜드가 그날 제 여정의 최종 목적지였기 때문입니다. 피닉스도 아니고 시애틀도 아니고 포틀랜드가 최종 목적지였고, 그 다음날 새벽예배를 인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새벽예배 중에 내게 특별한 은혜가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하루가 아니라 인생 전체의 최종 목적지에도 그날처럼 도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참 많습니다. 목적지를 향해 출발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경유지에서 많은 해프닝을 겪기도 합니다. 게이트가 바뀐 줄 모르고 마냥 기다리다가 나중에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터넷을 하거나 피곤하여 졸다가 비행기를 놓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행 스케줄이 망가지고 추가 비용이 들기도 합니다.

인생이란 여정에서, 더 가야 하는데 중간에 멈추고 최종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합리화하거나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가려고 했으나 갈 수 없는 사정이 생겨서 결국 탄식하며 포기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는 이 모든 과정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어디여야 하는가? 공부하는 이유, 땀흘려 일하는 이유, 신앙생활의 목적, 좌우 대립 논쟁의 종착점, 미중 무역 분쟁의 결론은? 내가 목표라고 이야기하는 그것은 정말 최종적인가요? 일시적이지 않고 영원한 것인가요? 현상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이고 완전한 것인가요?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생각했던 그 목표는 경유지일 뿐입니다. 경유지에서는 잠시 머물 뿐입니다.

우리가 성취한 자리가 경유지라는 것을 알았다면 우리는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계속 최종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기다리며, 기대하며, 기여하며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 최종 목적지는 어떤 물리적인 좌표나 공간이 아니라, 그곳에 이르는 과정 중에 누리는 절대자와의 동행 상태, 즉 평화의 관계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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