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7일, 민주당 대선 후보 20명의 첫 TV 토론이 끝났다. 월 스트리트 저널이 지적한 대로, 후보들이 “건강 보험과 기타 문제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놓고 티격태격했음에도 조 바이든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

연합감리교회(UMC)가 동성애 성직자 및 동성결혼 금지 강화 정책을 발표한 이후 4개월 만에 교단 분열이 거의 확실해졌다는 소식, 하원 교육 및 노동 위원회는 25일, 종교의 자유가 성적인 자유와 기타 시민권과 관련하여 축소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는 소식, 미국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들 중 하나인 샌디에이고에서 성매매 수익이 연간 8억 달러를 넘었다는 법무부 조사 자료에 관한 소식을 다룬 미디어들도 있었다.

오늘은 정말 좋은 소식을 제공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쁜 뉴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정치판의 독설, 성적인 부도덕, 종교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들 그리고 성매매 증가는 오늘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일부이다. 그런 소식들을 읽으면 두 가지 차원에서 맥이 빠질 수 있다.

첫째, 우리 문화의 중단 없는 부도덕의 흐름이 우리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생식의 자유”나 “결혼의 평등” 혹은 “존엄사”에 관한 소식을 반복해서 듣는다. 대부분의 미디어들은 대부분의 미국인들보다 진보적이기 때문에, 뉴스를 보고 미국 전체가 그런 것처럼 생각해선 안 되지만, 이러한 문화적인 압박이 우리를 낙담시킬 수 있다.

둘째, 우리는 성경적 진리의 입장에서 실망할 수 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9)는 날마다 우리가 들을 필요가 있는 성경적 원리다. 스스로 부도덕의 비탈길을 미끄러져 내려가지 않는다 해도, 싸움을 포기하는 건 쉬워도 홀로서기는 힘들 수 있다.

“진짜 좋은 소식”을 언제 들려줄 것인지 궁금한가? 최근 읽은 글 한 편이 내 영혼을 흔들었다.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그린 뱅크는 산중 계곡에 전파망원경이 설치된 곳이다. 이 거대한 기기는 ‘초인의 귀와 같아서, 최저주파부터 최고주파까지 감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한 기술의 대가는 크다. 전동칫솔만 작동시켜도 그 기기의 감지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그린 뱅크 주민들은 셀폰, 와이파이, 전자레인지 등 모든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 한 칼럼니스트는 그곳을 “인터넷 없는 땅”이라 불렀다. “국립 전파 침묵 구역”에서 칼럼니스트는 “수 년 간 들어본 적 없는 종류의 침묵”을 경험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질문한다. “우리 자신의 두뇌 속에서 위험에 처해 있는 침묵 구역을 누가 구할 것인가? 기억의 멀고먼 은하수에서 전해져 오는, 감지하기 힘든 생각은? 항상 존재하는 인터넷의 윙윙거림이 그 모두를 내몰고 있는 것 아닌가?”

지오반니 란프랑코, 까마귀가 가져다주는 음식을 받는 엘리야

열왕기상 18장은 성경에서 가장 큰 산꼭대기 체험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예언자 엘리야의 제물을 태울 불을 내려, 바알의 선지자들을 패배시키고, 신의 심판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한다. 사악한 이세벨 왕비는 반드시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엘리야는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였다(열왕기상 19:3).

예언자는 국가가 자신을 버렸다면서,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10절)라고 하나님께 투덜거린다.

그러나 심오한 고독 속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12절)를 들을 수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미래를 위해 선택한 지도자들에 대해 듣게 된다(15-17절). 엘리야는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라고 말씀하신다(18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격려와 권한을 경험하려면,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 달리 표현한다면, 우리의 영혼을 위한 “전파 침묵 지역”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힘이 없으면, 격변하는 문화 속의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소명을 감당할 수 없다. 그 힘은 우리 안에 있다. 우리는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다(고린도전서 3:16).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어느 날 “그의 참모습”을 그대로 볼 때까지 그분을 닮아가야 한다(요한일서 3:2).

예수님처럼, 기도할 수 있는 “한적한 곳”에서 하루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마가복음 1:35). 큰 일들을 겪고 기회들이 사라진 뒤에, 우리는 기도하기 위해 따로 “산에 올라”갈 필요가 있다(마태복음 14:23).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면, 우리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자신만의 겟세마네를 찾을 필요가 있다(마태복음 26:36).

주말에 한 시간쯤 비우고, 가만히 있으면서 하나님을 만날 것을 제안한다(시편 46:10). 전자기기들을 끄고 주님 향해 마음을 열자. 성령님께 묵상할 성경 구절을 가르쳐 달라 하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자.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찬양을 드리자.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이사야 26:3)라고 우리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우리가 “예수와 함께 있었음”(사도행전 4:13)을 알게 될 것이다.

* 편집자 주 : 문화사역자 짐 데니슨 박사의  6월 28일 칼럼 발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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