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되심과 머리되심

오늘날 교회는 개교회적으로도 공동체성을 상실했습니다. 교회들 간의 공동체성 역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몇 년 전 ‘주되심과 머리되심’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을 향한 우리의 헌신이 진심으로 행해져야 함을 가르치셨다. 이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주되심). 하지만 성경은 동일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태도는 그의 백성을 향한 우리의 태도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머리이신 그분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그분의 몸에 관한 우리의 태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머리되심). 따라서 그의 교회에 대해서는 냉담하면서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섬기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더 윌리스, 『급진적 그리스도인』)

성경은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머리되심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성도 개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납니다(마 7:21-22, 눅 6:46, 행 16:31, 롬 10:9, 고전 6:17). 그리고 머리되심은 실제로 그리스도와 그의 몸과의 관계성과 연관되어 나타납니다(엡 1:22-23, 4:15, 5:23, 골 1:18, 2:19).

주되심이 그리스도와 성도 개인과의 관계를 통해 나타난다면, 머리되심은 그리스도와 전체 교회와 관련된 표현입니다. 주되심과 머리되심은 따로 분리될 수 없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개인들의 주되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백성 공동체에서도 머리가 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더 윌리스의 마지막 질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진지하고 신실하게 응답해야 합니다.

"그의 교회에 대해서는 냉담하면서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섬기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선교 목적을 양적 성장과 외형적 번영으로 둔갑시킨 교회들이 축복과 형통함의 약속을 내걸고 이 땅의 거리를 십자가로 뒤덮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그들이 해놓은 일이란 그리스도의 몸을 갈가리 찢어놓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 참담한 비극의 원인은 그들이 혹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믿었는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까맣게 잊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의 추한 행태들은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망각한 결과물입니다. 그들은 상속자인 아들을 죽이고 유업을 가로cos 농부들의 말로를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마 21:33-41).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골 1:18).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이 인정되고, 이 지상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때 그분이 우주 만물의 머리가 되실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교회의 간판을 내리고, 높이 걸었던 십자가를 내리고서라도,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임을 명심하면서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에 순종하여, 모든 교회가 하나 되는 성령의 역사가 이 땅에 일어나기를 소망해 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무엇인가를 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자기를 위해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몸은 결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또 그런 우리들이 모인 교회 역시 우리들의 몸이 아닙니다. 로마서 12:1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고 했을 때, 그것은 그들의 기도와 예배를 더 깊이 있게 표현하라는 권고였습니다. 이때 몸은 각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고, 또 로마에 있는 다양한 가정교회들을 가리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해석 모두 희생적인 삶에 대한 몇 가지 교훈들을 가르쳐 줍니다. 그 희생의 열매는 거룩한 기쁨, 우리가 열망하는 참된 기쁨입니다.

주되심

우선 몸에 해당하는 헬라어 '쏘마'는 신체적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바울은 우리의 전 존재를 드려 하나님과 관계 맺으며, 그 결과 이웃 간에도 관계 맺을 것을 권고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드리라는 로마서 6:13과 우리 몸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전이므로 성전처럼 다루어져야 한다는 고린도전서 6:19-20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 몸을 드린다는 것은 우선 입으로만이 아니라 전 존재로 예배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설교와 찬양을 듣기만 하는 수동적인 청중이 아니라, 적극적인 예배자가 될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의 말과 태도, 감정과 행동이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해야 합니다.

우리 몸을 주님께 드린다는 것은 또한 육체적인 일을 함으로써 그분을 섬긴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을 위한 일을 하고, 입원한 환자를 찾아 위로하며,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장애우를 돌봐 주는 등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로만 사랑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기도가 발과 손으로 실천되며 우리의 선언이 사회적 행동으로 표현되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엠마우스 공동체를 설립한 피에르 신부는 신자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타인이나 스스로 비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 간에 근본적인 구분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구분이 있다면 '자신을 숭배하는 자'와 '타인과 공감하는 자' 라는 구분, 타인의 고통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 자'와 타인을 고통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싸우는 자' 의 구분이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는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그냥 쓰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변화된 사람들만 사용하십니다.  건강해야 효율적으로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휴식, 영양섭취, 육체적 훈련은 전 존재에 영향을 끼칩니다. 기독교 공동체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각자의 몸을 돌보도록 서로 격려하는 일입니다. 특히 안식일을 지키는 일은 공동체 안에서 예배와 쉼과 성장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생산성 추구에 혈안이 된 현대문화 속에서 교회가 그런 흐름에 역류하는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가 가득 찰 때,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림으로써 그 사랑에 응답하게 됩니다. 제물을 수식하는 세 형용사들 가운데 하나인 '산(living)'은 일종의 역설입니다. 제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번제물 곧 죽여서 각을 뜬 고기를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신비는 자신을 기꺼이 포기할 때에만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21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도 바울이 말하는 대로 죽는 삶입니다. 죽어야 반듯한 모양으로 잘라집니다. 그런데 산 제물이 되는 바로 거기에 자유와 기쁨이 있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드린 순간을 회상해 보시시오. 그 순간 경험했던 충만한 생명력을 떠올려 보십시오.

사도 바울의 권고가 주는 도전은 그 순간들을 기억하고 기꺼이 드림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온 몸으로 표출할 때,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릴 때,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큰 평화와 기쁨을 알게 되고, 날마다 더 깊은 사랑과 헌신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머리되심

몸에 대해 두 번째로 가능한 해석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 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2:5에서 그리스도의 공동체적 몸으로 교회를 지칭하는 것을 볼 때, 1절의 몸도 보다 넓게 적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복수형으로 사용된 이 단어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속한 로마의 가정교회들을 가리키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쓴 목적이 로마에 있는 가정교회들을 연합시키는 것이었기에 이러한 해석은 더욱 타당성을 가지게 됩니다.

이 해석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요소는, 사도 바울이 로마 교인들에게 그들의 '몸(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릴 것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양한 작은 몸들, 곧 교회의 각 부분들을 하나님께 하나 된 전체로, 살아 있는 거룩한 제물로 드리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힘을 합칠 때 더 큰 일치감과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일을 통해 우리는 교회의 벽을 허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1의 몸이 가정교회들을 가리킨다는 확신을 주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목적을 표현하기 위해 친근함을 내포한 동사를 선택했습니다. '파라클레오'는 보통 '권하다' 또는 '격려하다'로 번역됩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인가를 요청한다는 의미를 가진 다른 동사들과 대조적인 의미로 이 동사를 선택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살았던 시대에는 그 단어의 의미가 오늘날보다 훨씬 더 공동체적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은 이메일이나 문자 혹은 전화로 격려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시대에는 직접 만나거나 편지에 의해 권고가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일하는 방식, 사람들을 돌보는 방식에 대해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명령하듯 거리를 두고 명령하지 않고 기독교 공동체의 동료 지체로서, 온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드리는 일에 참여할 것을 권했던 것입니다.

초기에는 모든 교회들 간의 형제애가 분명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먼 곳에 있는 형제들에게,' '타향에 거하는 형제들에게'와 같은 표현들이 자연스러웠습니다. 다른 교회의 형제자매들을 자기가 속한 교회나 공동체의 형제자매들과 똑같이 대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주님이실 뿐 아니라 몸인 교회의 머리 역시 그리스도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역시 로마를 방문한 적 없지만 동료 지체로서 다가갈 수 있었고 로마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를 동료 지체로 수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12:1의 몸을 공동체적 의미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부각시켜 주는 두 번째 요소는 형제들이라는 친밀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개인적 친분이 있던 이들에게 보낸 편지들과 달리, 로마서에는 이런 표현이 일곱 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모두 바울의 특정한 관심사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각기 다른 집단에 속해 있는 그들의 관계를 강조할 목적으로 이처럼 특별한 애정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각 가정교회의 지체들은 모두 형제자매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 위에 군림하는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동료로서, 그들 자신과 가정교회들을 하나로 연합한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격려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형제자매는 피상적인 단어가 되고 말았습니다. 별 생각 없이 던지는 빈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의미에서 우리는 형제자매이며 서로에게 온전히 헌신된 공동체로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혈육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을 함께할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이해나 개념 자체가 교회로부터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다른 교회 교인들을 자신의 형제자매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른 교회들을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동등한 형제자매로 여기는 교회도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자기들만의 공간을 구분하고, 자격을 제한합니다. 다른 교회의 형제자매들을 구분 없이 받아들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를 나누고자 하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결국 모든 교회들이 자기들만의 교회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의 '코이노니아'가 사라진 것은 물론, 교회들 간의 연합 역시 자취를 감추고 만 것입니다. 그 이유가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교회의 머리되심이 사라진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진정한 주님의 제자라면, 우리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여야 합니다. 교회들이 진정한 주님의 몸이라면,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어야 합니다. 내 교회도 네 교회도 없습니다. 모두가 주님의 교회들이며 모두가 주님의 양들입니다.

따라서 자기들의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자랑하면 주님의 몸 전체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몸의 다른 부분들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교회들과 교제하지 않고 혼자 커지려고 하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암 덩어리입니다. 자기네 교회만 건강하다고 말하는 것은 주님의 몸이 병들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파와 교단들이 생겨났는데 이런 말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소수라도 이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하나님 나라는 누룩처럼 부풀어 올라 마침내 온 세상을 구원하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모든 교회들이 간판을 내리고, 하늘 높이 솟은 종탑을 허물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진정한 형제자매로 여기는 영적 각성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주님은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일에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참된 하나님 나라의 형제자매가 되어, 복음의 복음 됨과 유일한 소망이 무엇인가를 세상에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