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에베소서 4:17-24).

에베소서 4:17-24은 성도가 버려야 할 옛 생활과 예수님에 의해 거듭난 새 생활에 대해 말씀한다. 즉 우리가 버려야 할 옛사람의 모습과 우리가 취해야 할 새사람의 모습에 대해 말하고 있다.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당시 에베소 교회의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전도하고 개척한 교회이다. 사도 바울이 개척한 모든 교회가 그러했듯이, 에베소 교회도 지역적인 영향을 받았다.

에베소 지역은 주요 무역로가 교차하던 상업의 중심지였다. 에베소 지역에선 특히 고대 근동의 풍요의 신인 '아르테미스'(아데미) 여신을 숭배했다. 이는 물질적 풍요와 성적인 방종을 의미했다. 에베소 사람들은 풍요를 누렸고, 성적인 방종에 빠졌지만,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들의 여신인 아데미에게 빌면 그만이었다.

에베소 교회에는 이러한 삶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모였다. 그러나 교회의 일원이 되었어도 옛 생활을 청산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교회는 양적으로 부흥했지만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를 기록했다.

바울은 믿기 이전의 옛 사람을 '이방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너희는 이방인처럼 되지 말라"(17절)면서, 옛 사람 즉 '이방인'의 실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우상 숭배의 세상에서 살아왔으며, 아데미에게 제사를 드리면 모든 죄를 사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여전히 이전의 삶에 머물러 있다면, 교회에 속해도 '이방인'과 다름없다고 바울은 말한다. 이는 에베소 교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버려야 할 '이방인'의 모습으로서 바울은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17절)고 말한다. 허망하다는 말은 "방향이나 목표가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만물을 만드셨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에 의해 창조되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하셨지만, 죄악으로 말미암아 지금 고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이 당연히 하나님을 알고 섬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방인과 같이 허망한 삶을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울 사도는 그 이유를 18절에서 말하고 있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18절)라고 했는데, 이는 판단하는 능력이나 총명, 그리고 이성의 능력이 어두워지는 것을 말한다. 또한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18절)에서 '무지함'은 도덕적 판단력을 잃어버리고 선악이 모호해진 상태를 말한다. '굳어짐'은 강퍅해지고 자기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감각 없는 자 되어"(19절)는 말 그대로 어떤 자극에도 감각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상태에 빠진 그들의 삶은 어떠할까? 19절을 보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라고 말한다. '방임'이란 자포자기의 상태를 말한다. 부끄러움도 체면도 모르고 순간의 쾌락과 육체의 정욕에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내맡기는 것이다.

이제 사도 바울은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의 삶과, 하나님이 누구신지 혹은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의 삶의 차이에 대해 설명한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혹은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에베소 교인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듣고 배웠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20-21절).

믿는 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에 대해 듣고 배웠기 때문에 이방인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에베소 교인들이 무지를 핑계로 자신들을 합리화시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바울은 '이방인'을 구체적으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22절)이라 표현한다. '옛 사람'은 앞에서 언급한 '이방인'을 뜻한다. 아담의 범죄 이후 부패하고 왜곡된 인간의 모습을 뜻한다. 바울은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고 말한다.

바울이 말하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일은 '새 사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23-24절).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악을 혐오하고 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삶의 주도권을 주께 내어드려야 한다.

특히 '옛 사람'과 비교된 '새 사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버려야 할 '옛 사람'이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은 것이었다면, 우리가 입을 '새 사람'은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다. 첫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다면,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이 주어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이 되신 분이기 때문이다(요 11:25).

'새 사람'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창조된다. 이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게 살고, 부패와 부정을 피하며, 세상의 온갖 더러움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동시에 이웃과 더불어 올바르게 사는 것이다. 하나님 경배와 이웃 사랑이 바로 '새 사람'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었고, '옛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옛 사람'의 삶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옛 사람'의 잔재가 남아 있다. '옛 사람'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를 끊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전 생애에 걸쳐 계속되어야 할 작업이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다. 우리가 '새 사람'을 입을 때 우리의 삶은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