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객관적인 성경은 가장 주관적인 성령과 함께 살아 움직일 때 완전하다."

제임스 패커 교수가 “만약 예수가 하셨던 일이 교회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성령이 하시는 일 역시 중요하다”고 말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나님 스스로 우리 안에 거하시며, 그래서 우리가 새로워져서 오늘의 세상에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시는 성령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데 우리는 너무나 무지했다. 가장 객관적인 성경은 가장 주관적인 성령과 함께 살아 움직일 때 완전하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이사야 61:1-2).

요한복음 14-16장에 나오는 예수님은 고별 연설에서 제자들을 위해 성령에 대해 네 번씩이나 언급하셨다. 제자들을 뒤에 남겨두고, 곧 하늘로 올라가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그의 제자들과 영원히 같이 계실 또 다른 보혜사, 곧 진리의 영을 보내도록 요청하신다. 예수님의 잡히심과 죽음으로 낙망하게 될 제자들에게 성령은 위로와 확신을 줄 것이라고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걱정하지 말아라!” 성령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상기시키실 것이다. 그뿐인가? 성령은 그들을 진리로 인도할 것이다. 성령은 자기 마음대로 말하지 않고, 오직 그가 들은 것만 말할 것이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제자들에게 말할 것이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 16:14).
예수님의 제자들은 좋은 학생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잘못 이해했고,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통해 가르치신 말씀의 포인트를 놓쳤다. 심지어 예수를 부인하기까지 했다. 예수님이 하나님 곁으로 떠나신 다음, 어떻게 그런 그들이 더 나아질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까?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보혜사를 드디어 보내주셨다(요 14:16).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할 것이다”(요 14:26). 제자들은 이제 성령의 내재하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분별하며 살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호렙산을 찾아 정처 없이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제자들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됐다. 하나님의 영이 제자 가운데 임한 것이다. 예수님이 간절히 기도하셨던 겟세마네 동산이 제자들의 마음 한가운데 있게 된 것이다. 요한일서 4:15 말씀과 같이, 이제부터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된것이다. 이제부터 제자들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성령이 이들 안에 거하게 되신다(고전 3:16).

성 베드로의 순교, 미켈란젤로

예수님의 사복음서에 이어지는 서신서에서 예수님께서 삶과 말씀으로 보여 주신 분별의 지혜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제자들의 삶과 사역을 통해 생생히 증거될 것이다. 예수님이 알려 주신 분별의 지혜가 제자들의 구체적인 삶과 사역을 통해 평가되고 정리된 것이다. 제자들이 분별의 본을 보여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고전 2:12-13).

성령이 부어지고 난 후 제자들은 이전에 갖지 못했던 분별과 통찰력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서신서들을 쓰게 된다. 그래서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된다”(엡 3:9).

하나님이 성령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들은 변했다. 전혀 다른 사람들이 되었다. 성령으로 충만했을 때 그들 모두는 그리스도의 거침없는 대변인들이 되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2:1-5에서 말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의 방식으로 복음이 선포되었을 때 사람들은 드디어 믿기 시작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는 말씀이 실재가 되었다.

더 나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은 죽기까지 믿음의 증인들이 되었다. 카일 아이들만이 그의 책 『팬인가 제자인가』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언급했다.
“마태는 에디오피아에서 칼에 맞아 생을 마감했고, 마가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죽을 때까지 거리에서 말에 끌려 다니다가 숨이 끊어졌고, 누가는 그리스에서 교수형을 당했고,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고, 도마는 인도의 선교 여행 중에 창에 찔려 죽었고, 예수의 다른 형제 유다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믿음을 배반하지 않은대가로 활에 맞아 죽었고,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참담하지만 의로운 죽음을 선택하게 했을까? 바로 성령이시다! 성령이 그들을 죽기까지 예수를 따르도록 인도했다. 그들을 죽음으로 이끈 성령이 없었다면, 오늘날 지구상에는 단 한 명의 크리스천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행동하시는 성령은 매우 실제적이고, 개인적이며, 구체적이다. 이런 깨달음이 분별의 기초다. 성령은 무대 위의 특수효과인 연기처럼 나타났다가 슬그머니 사라지지 않으신다. 성령은 우리의 현실 속에 실제적인 형태로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요한복음 17:17 말씀처럼,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시키신다.

성령이 우리 영혼의 중심에 거하시는 동안 그는 우리를 위로하고 가르쳐서, 우리를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도록 돕고, 그분의 선한 목적으로 사용되도록 인도하신다. 성령은 우리 안에 빈둥대고 머물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 관찰이나 하는 무책임한 분이 아니시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의 영과 대면한 후 불타는 심령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죽을 때까지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살게 되었던 것처럼,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결단하게 하고, 과감히 행동하게 돕는다. 그래서 성령이 일하신다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분별은 다름아닌 성령이 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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