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언어와 신앙생활에 관한 신간 나와

 

7월 초, 기독교 언어와 신앙생활에 관한 신간이 나왔다. 최성수 목사가 집필한 책 『의미는 알고나 사용합시다』가 예영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출간되었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교회에서 혹은 신앙생활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의미와 그것의 잘못된 사용에 집중했다. 성도가 읽으면 가장 유익하다. 그들을 교육하는 목회자에게도 의미 있는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앙 언어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강화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면서, 저자는 “교회 언어 가운데 의미와 사용과 관련해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많다. 이것을 바로 잡지 않으면 신앙에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 있다. 목회자가 ‘목회’를 잘못 이해하고 있을 때 목회자 스스로가 교회 문제로, 세상의 근심거리로 전락한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잘못 이해할 때 교회 문제를 초래할 수 있고, 또한 세상의 근심거리가 된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부름 받은 사람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신앙의 초기 단계부터 기독교 관련 언어 및 개념에 대한 바른 이해는 물론이고 그것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받아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일례로, '예배드린다'와 '예배한다' 중 어느 표현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은 교계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는데, 저자는 "일단 성경에 보면 예배를 '드린다'는 표현이 없다."면서, '예배하다'가 성경적 근거를 가진 말이라고 말한다.

"많은 성도들이 예배는 성도가 정성을 다해 예를 갖춰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이해이다. 예배는 일정한 모양을 갖추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는 역동적인 현장이다. 어원적으로 보아도 이미 예배라는 말에는 하나님의 존귀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포함돼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예배드린다'와 같은 습관화된 언어가 "오늘날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만 집중하는 신앙생활을 낳게 한 주범일 수 있다."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성전‘과 ’교회당‘에 대해, 저자는 '교회당'는 예배하는 '장소'를 의미한다면서, '교회당'을 '성전'과 동일시하는 관행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교회당을 성전과 동일시할 때 '교회 중심적인 삶'을 최선으로 여기는 태도를 낳게 된다. 교회당에서 하는 일만 거룩하고 그 밖에서 하는 일은 세속적이라 간주한다. 교회공동체의 지체로서 의식하고 행동하는 한, 성도가 어디에 있든 그곳이 성전"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데일리굿뉴스의 7월 31일 보도에 따르면, '잘못된 신앙언어를 바로잡자'는 주장은 10여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예장 통합은 예배용어를 바로잡기 위해 2003년 용어집을 발간했으며, 그 이듬해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와 기독교대한감리회도 바른 예배 용어 연구에 참여했다.

당시에도 예배, 예식은 물론 기도 용어 사용에서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들이 나왔다. 사회자(예배 시에는 '인도자'), 대예배(주일예배), 헌금(봉헌), 일요일(주일), 성가대(찬양대), 자정예배(송구영신예배) 등이 대표적인 오류로 지적되었다.

특히 기도 용어에서 '기도드렸습니다', '사랑의 예수님', '당신' 등이 잘못 사용되는 용어로 꼽혔다. '기도드립니다,'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가 맞는 표현이다.

서울장신대의 김세광 교수는 "한국교회 안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 중 비성서적이거나 비신학적인 낱말과 술어 등이 존재한다."면서, "문제 있는 용어들은 건설적인 방향으로 변경해야 한다. 잘못된 오류를 조사하고 바른 표현으로 바로 잡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미는 알고나 사용합시다』의 저자 최성수 목사는 현재 한국문화선교연구원 객원연구원, 「매일성경」 “묵상과 설교” 집필자, 월간 「신앙세계」 고정 칼럼니스트이다. 기독교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목회와 신학, 그 뗄 수 없는 관계』, 『계명은 복음이다』, 『제3의 설교론』, 『대중문화 영성과 기독교 영성』, 『영화를 통한 묵상과 인식 그리고 +α』, 『기독교와 영화』, 『신학적 미학과 기독교 영화 미학』 등이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이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현실로 나타나는 곳이다. 사람의 힘으로 확장할 수도 없고 또 세울 수도 없다. 이런 의미를 모르진 않았을 텐데, 어찌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나 ‘하나님 나라를 세운다’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을까? 언어적인 표현이 보통은 이해의 정도를 반영하지만,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정신분석 임상사례를 통해 언어가 무의식을 반영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혹시 하나님 나라를 빌미로 인간의 나라를 공고히 하려는 욕망은 아닐까? 교회 구성과 운영에 자신의 철학을 관철시키려는 숨은 의도는 없을까? 제국주의적인 신앙관이 우리 신앙에 침투한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더 이상 관용적인 표현이라고만 여길 수 없다. 신학적으로 오해의 소지가 많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잘못된 욕망을 드러내는 언어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본문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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