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고 육신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자식 곁으로 가게 마련인가보다.  비즈니스를 하면서 손님들을 통해 미국식 노후의 삶을 배우게 된다.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어느 시점에 다 정리하고 자식 곁으로 오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키 크고 멋진 손님이 새로 오셨다. 헬렌이 뒤따라 들어오며 자기 엄마 수잔이라고 소개했다. 모녀가 모델같이 큰 키에 멋스럽게 옷을 차려 입어서인지 가게 안이 훤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헬렌은 우리 가게의 미소천사 손님이다. 항상 웃는데다 미소가 너무 예뻐서 붙인 별명이다. 헬렌은 건강이 좋지 않은 엄마의 노후를 책임지기로 한 모양이었다. 교회일로 바빠 보이던데 엄마까지 모시게 되어 더욱 바빠 보였다.

어느날 수잔이 혼자 운전을 하고 오셨다. 몸이 편치 않은지라 안부를 물었더니, 뜻밖에 수잔은 눈물을 보이며 한숨지으셨다. 가져온 옷만 한참 만지작거리시더니, 자식 곁으로 온 것이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리셨다. 수잔은 의상 디자이너로 명성을 얻고 왕성하게 활동해 온 커리어 우먼이었다.

돈도 명예도 얻었지만, 고령이 수잔의 활동에 방해꾼으로 다가왔다.  모든 걸 정리하고 올해 초 헬렌 곁으로 오면서, 시설 좋은 시니어 리빙으로 갈까 생각했는데, 헬렌이 같이 살자고 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따로 살아서인지 모녀간에 갈등이 있어 보였다. 게다가 수잔은 무릎 수술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했다. 깔끔하고 단정한 수잔은 딸의 보살핌이 마땅치 않은지 가끔씩 불만을 표시하곤 했다.

하지만 그날의 하소연은 조금 충격으로 다가왔다.  딸의 “church face”를 벗기고 싶다고 말하는 수잔의 얼굴에 분노가 스치고 지나갔다. 헬렌은 교회의 핵심 멤버로 맡은 업무가 많아서 늘 바빠 보였다. 헬렌에게는 친절한 미소와 온유한 말투로 사람의 마음을 쉬게 하는 능력이 있는 듯했다. 그런데 수잔의 말이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교회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듯, 수잔은 교회를 “가면무도회장” 이라 표현했다. 교회에서는 미소천사로 온갖 봉사를 다하면서, 집에 와선 짜증으로 일관하는 딸의 두 얼굴을 몹시 싫어했다. 수잔은 딸이 교회에 갈 때에는 미소천사의 가면을 쓴다며 농담 섞인 야유도 했다.

예전에 수잔의 고등학교 친구 하나도 그랬단다. 학교에선 온갖 말괄량이 짓을 하면서 교회에 가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거였다.  수잔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얘기를 듣다보니, 꼭 교회가 아니어도 누구나 그런 가면 하나쯤은 쓰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교회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가면 뒤에 자기를 감추고 그다지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습관적인 인사를 주고 받는 모습이 예수의 정신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가면 뒤에 숨은 그 사람은 괜찮은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수잔은 말했다. 때론 남들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자신만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아서,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 보고 싶단다. 사는 게 괜찮으냐고...

한편 수잔은 헬렌의 이중성이 자기로부터 비롯됐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디자이너로 명성이 쌓이면서 공식석상에 헬렌을 데리고 갈 일이 생기면, 대중 앞에서 엄마의 체면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집에서 미리 훈련을 시켰는데, 그게 몸에 배어 속마음과 관계 없이 훈련된 미소를 짓는 것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드는 모양이었다. 또한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헬렌이 수잔에게 같은 요구를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수잔은 팔십 중반 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더 이상 자신을 가면 뒤에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얼마나 자신을 망가뜨리는지, 얼마나 피곤한지를 알기에 엄마로서 가면 쓴 헬렌이 안타까운 듯했다. 진작 이 짐을 내려 놓았더라면 자신도, 헬렌도 훨씬 자유로웠을 텐데 하는 회한이 드는지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아무리 잘 살아도 후회는 남기 마련이다. 체면, 고정관념, 학력 등의 가면을 벗어 버리고 민낯으로 살아도 괜찮다고 예수님이 우릴 초대하셨나보다. 자기를 방어하려는 짐 한 짝만 내려놓아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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