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가장 상징적인 행사는 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이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아리아인의 우월성을 선수들이 보여 주길 바랐지만, 미국 출신의 흑인 선수 제시 오웬스가 독일 선수들을 제치고 금메달을 4개나 획득했다. 그는 83년 전 8월 5일, 200미터 달리기로 금메달을 땄다. 10년 전 8월 6일, 소니아 소토마요르가 미국 최초의 히스패닉 대법원 판사로 확정되었다.

8월 3일, 텍사스 주 엘파소에서 총격이 시작되기 20분 전, 4페이지에 달하는 선언문이 온라인에 올라왔다. 선언문은 “나는 크라이스트처치의 총격범과 그의 선언을 지지한다. 이번 공격은 히스패닉의 텍사스 침공에 대한 대응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필자는 “나는 침입에 의한 문화적 및 인종적 교체로부터 조국을 방어하고 있는 것뿐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경제 및 정치 세력이 미국인들에게 적대적인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우리가 사람들을 충분히 제거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의 방식 또한 좀 더 지속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기가 막히게도, 그의 선언문은 이렇게 끝났다. “미국을 위한 투쟁은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들이 더 틀릴 수는 없다. 이것은 미국과 유럽을 위한 투쟁의 시작이다. 나는 파괴로부터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한 투쟁의 선두에 서게 되어 영광스럽다.”

엘파소 총격범은 『대 교체(The Great Replacement)』라는 책에서 동기 부여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문구는 책 제목이며 동시에 이데올로기다. 르노 카뮈(알베르 카뮈와는 무관)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여행 수필가로 백 권 이상의 책을 썼다. 그는 2012년 『대 교체(The Great Replacement)』라는 제목의 책에서 “원조 백인들의 유럽이 검은색과 갈색 피부를 가진 이민자들에 의해 역식민지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뮈는 모든 서구 국가들이 정도는 서로 달라도 ”인종적이고 문명적인 교체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인 멜리사 로시에 따르면, 카뮈의 주장은 유명 강사와 웹사이트를 통해 널리 퍼졌다. 또한 그의 주장은 백인우월주의자들과 백인국수주의자들의 증오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인구통계학자들은 “대 교체”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민, 민족 및 사회학에 관한 사실을 크게 왜곡시킨다고 지적한다. 퓨 리서치 센터는 유럽 무슬림 인구는 5% 미만이라고 추정한다. 최고의 이민 비율을 반영한다 해도 2050년에 대략 15%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런데도 이 끔찍한 이데올로기는 최근 수년 동안 수없는 잔혹 행위를 부추겼다. 지난해 3월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모스크 두 곳에서 51명을 살해한 혐의로 고소된 브렌튼 타란트는 “대 교체”라는 제목의 74페이지 선언문에서, 무슬림을 “높은 출생률의 문화권에서 온 대규모 침입자들”이라 규정했다.

미 수사당국은 “대규모 교체” 개념이 지난 10월 피츠버그의 시나고그에서 11명을 살해한 범인에게 동기를 부여했다고 믿는다. 캘리포니아 주 포웨이의 시나고그에서 1명을 죽이고 3명에게 부상을 입힌 범인과 오클라호마 주 찰스턴에서 흑인 9명에게 총을 쏜 딜란 루프, 오클라호마 시티의 폭탄 테러범 티모시 멧베이는 이런 사상이 담긴 소설을 소유하고 있었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77명을 살해한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내 문화와 내 국민을 방어하기 위해” 총격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엘파소 용의자를 비롯한 여러 총기 난사 범인들은 이민자들을 국가와 문화, 생활양식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과는 정반대로 이민자들을 보아야 한다. 신학자 에드 스테처는 이렇게 말했다. “인종주의, 백인국수주의, 백인우월주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문자 그대로 중동 출신의 검은 피부를 가진 유대인 구세주를 경배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인종차별은 죄일 뿐 아니라 어리석은 생각이다.”

남서부 침례신학교의 아담 그린웨이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끔찍한 폭력을 저지르도록 엘파소 총격범의 증오에 불을 붙인 인종적/민족적 우월성/열등성에 대한 모든 이데올로기를 강력하게 비난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두 사람의 말은 절대적으로 맞다.

성서도 이를 분명하게 밝힌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출애굽기 22:21).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위기 19:34).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태 25:38, 40).

이민자들을 우리의 생활 양식에 대한 위협으로 보지 말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요한복음 14:6) 하나님께로 그들을 인도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곳, 우리가 아는 사람들부터 시작하자.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신성한 약속과 복음의 기회로 분다면, 하나님 아버지가 그들을 보듯이 우리도 그들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을 전하면 언젠가 우리는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요한계시록 7:9).

그날 이 세상에서 “거류민과 나그네”(베드로전서 2:11)였던 우리는 시민권이 있는 하늘에 머물게 될 것이다(빌립보서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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