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며칠이지요?”“여기가 어디지요?” 의사는 검사지의 질문을 하나씩 읽어갔습니다. 병원을 가보기로 결심한 것은 그날의 경험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아침에 교회에 가기 위해 자동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습니다. 순간 빠뜨린 물건이 생각나서 집안으로 들어왔고, 물건을 챙긴 다음 출발하기 위해 다시 차로 갔습니다.

문제는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열쇠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디에 놓았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움직인 동선을 되짚어 보아도 열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제발, 생각 좀 나라. 제발!’ 시간은 지체되는데 열쇠가 없으니 출발할 수 없었습니다. 답답하다가, 초조하다가, 한심하다가, 절망스럽다가, 그만 다리가 풀려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깊은 탄식이 터져나왔습니다. 내가 너무 바보 같았습니다. 부쩍 깜빡하는 증상이 심해 자신감이 예전 같지 않았는데, 그날은 절망감이 한순간에 몰려왔습니다.

패밀리 닥터는 치매가 그렇게 걱정된다면 전문의를 만나라며 소개해 주었습니다. 1차적인 검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지능력을 묻는 기본적인 질문으로 검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정상인이라면 금방 대답했겠지요.  긴장감이 역력했던지, 의사는 마음을 편하게 갖고 천천히 대답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정답의 갯수가 기준치에 못 미치면 정밀검사를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가만, 오늘이 며칠이더라?’ 현 주소와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는 인지 대상의 기본인가 봅니다. 영적으로도 시간과 장소에 대한 인지 능력을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때를 분별할 줄 알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답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기억이 나지 않아 당황했던 일은 또 있습니다. “어! 가만. 내가 무엇을 심었더라?” 텃밭에 작물 키우는 재미를 느낀 이후 마트에 가면 종자 코너에 꼭 들렀습니다. 5월 하순 어느 날 저렴한 할인 가격으로 씨앗 한 봉지를 샀습니다. 고추, 깨, 토마토, 상추, 감자 등을 심었으니, 다른 채소도 심어 보자는 도전의식도 작용했습니다. 이미 조성된 텃밭과 울타리 사이에 작은 공터가 있었는데, 그곳에 땅을 파고 두세 개씩 정성껏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리곤 다른 일들 때문에 까맣게 잊었습니다.

7월 중순 어느날 그새 싹이 나서 땅바닥을 타고 넓게 퍼져가는 넝쿨을 발견했습니다. 부엌 바닥 정도의 면적이 파란 잎과 줄기로 가득했습니다. 기쁘기도 했지만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무슨 채소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호박잎도 아니고, 감자 줄기도 아니고, 오이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심어 놓고 무슨 씨앗인지가 기억나지 않다니, 정말 중증이다 싶었습니다. 씨앗이 담겨 있던 봉투를 땅에 꽂아 놓거나, 팻말을 만들어 표시해 두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그로부터  2~3주가 지난 8월 초 어느 날 다시 그곳에 가보니, 무성한 넝쿨 잎 아래로 둥그렇고 파아란 열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어른 주먹 두 개 만하고 럭비공처럼 생긴 과일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우리 집에 수박(Crimson Sweet Watermelon) 이 열리다니! 이게 수박 넝쿨이었구나. 맞아! 내가 심은 게 수박 씨앗이었어!”

열매는 나무의 정체를 알려 주지요? 둥그런 수박 열매는 나의 건망증을 깨워 주었고, 내가 그때 무엇을 파종했는지, 그리고 넝쿨이 무슨 채소인지를 분명히 알려 주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어찌 살아왔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구요? 당신이 남긴 흔적과 현재 맺고 있는 열매가 당신을 증명해 주고 있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내 안에서 그리고 주위에서 많이 들려옵니다. 회복을 위해서는 자각이 필요하고, 그를 위해서는 질문이 필요합니다. 건망증 때문에 겪은 질문들을 던져 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요? 그리고 우리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일, 즉 맺은 열매가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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