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전경(워싱턴 주)

하늘은 푸르고 산천은 더 푸르른 서북미에 비지땀을 흘리며 막바지 여름이 올해에도 어김 없이 풍성한 선물을 한아름 안고 찾아왔다.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수려하며, 순박한 인심 또한 후하여 언제나 풍성한 가을 같은 정경이다. 내가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지도 강산이 세 번 변하고 또 한 번 변하려 하는 어언 37년이 되었다. 이제는 누가 뭐라 해도 정든 내 고향이 되었다.

이곳에 자리를 잡고 처음 찾은 곳이 바닷가 낚시터였다. 7월의 한여름 밤낚시를 하는데 명태가 잘도 올라온다. 두어 시간 잡고 보니 가지고 간 통에 그득하게 20여 마리가 잡혔다. 싱싱한 생선으로 끓인 명태 매운탕이 얼마나 나를 감동시켰는지 모른다. 그 후로 부둣가에서 꽃게를 잡고, 바닷가 공원으로 조개를 캐러 가고, 물이 빠진 바닷가에서 미역을 채취하고, 정신을 홀딱 빼놓는 일들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곳이다.

관심을 갖고 부지런히 찾다보면 진귀한 것들이 널려 있다. 4천 미터가 넘는 산과, 태평양 드넓은 바다와 요리조리 비집고 들어온 해안선이 발달한 퓨젯사운드 만은 얼마나 풍성한 선물을 안겨 주는지 모른다. 캐나다에서 발원하여 수백 마일을 달려온 컬럼비아 강에는 진귀한 철갑상어와 미국인들이 가장 즐겨먹는 연어와 동양인이나 러시아인들이 좋아하는, 산해진미에서 빠질 수 없는 싱싱한 준치가 넘쳐난다. 특별히 금년에는 750만 마리 이상이 몰려와 북새통을 이루었고, 나누어 주어도 받지 않을 만큼 흔한 생선이 되었다.

봄부터 돋아나는 굵고 연한 고사리는 워싱턴 주와 오리건 주에 있는 산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퓨젯사운드 바다 속에서 잡히는 어른 팔뚝 만큼 커다란 구이덕이라는 조개는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최고의 횟감이다. 알래스카 주에서부터 캘리포니아 주에 이르는 해안에 서식하는 던지니스 꽃게는 워싱턴 주 던지니스라는 지역 이름을 따서 부를 정도로 풍성하다.

물이 많이 빠진 날, 허벅지가 물에 잠길 정도 깊이의 백사장에서 주위를 온통 벌겋게 물들여 놓고 서식하는 홍삼들을 잡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태양이 빛나는 여름날 타코마의 내로우 브리지(narrows bridge) 밑으로 가면, 사람 키 만큼 커다란 대왕문어를 만나뵐(?) 수 있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일설에 의하면 세계에서 문어가 가장 많이 서식하는 지역이라고도 한다.

물이 쭉 빠진 날 바닷가 진흙 뻘에서 바다 우렁이라고도 하고 소라라고도 하는 울퉁불퉁하고 단단한 집을 짓고 사는 것들과 술래잡기를 하는 묘미는 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후드 산 중턱에 가면 고랭지에서 자라는, 약효가 뛰어난 가시오가피가 은은한 향으로 산자락을 수놓으며 자생하기도 한다. 어디를 가나 보라색 예쁜 꽃을 피워대고, 온 세상을 점령할 기세로 낙하산에 씨앗을 매달아 수없이 날려 보내는, 간에 최고인 약재 엉겅퀴는 나와 매일매일 입맞춤을 하며 유익한 차를 제공한다.

오리건 주 와 워싱턴 주에는 산딸기가 어디를 가도 지천인데, 특히 컬럼비아 강가의 산딸기가 가장 실하고 풍성한 육즙을 제공한다. 몇 시간 수확한 산딸기를 설탕과 버무려 3개월 지나면 맛있는 복분자 주스가 되고, 6개월이 넘어가면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맛있는 복분자 주가 되어 긴긴 겨울밤을 포근하고 운치있게 해준다.

밴쿠버와 포틀랜드 지역에는 기후가 온화하여 각종 과일이 많이 생산되는데, 그중에 감과 무화과 그리고 모과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것 같다. 못 생겨서, 먹어보면 맛이 떫어서, 방이나 차 안에 놓아두면 향이 은은하여, 꿀에 재워 숙성시켜 차로 마시면 효과가 좋아서 네 번 놀래킨다는 모과는 이곳의 것이 최고의 질을 자랑하는 듯하다.

수십 년 전 누가 심어 놓았는지 그린벨트에서 자라고 있는 밤나무 60여 그루는 많은 사람들에게 후드득 드득 밤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토실토실한 알밤을 줍는 기쁨, 맛있는 밤을 먹는 기쁨, 한 웅큼씩 이웃과 나누는 기쁨을 선사한다.

8월 초순이 되니, 무더위에 묻어 온 가을바람이 울창한 숲속에 각종 버섯을 키워놓았다. 며칠 전 우리 집 옆 숲속에 가보니 맛과 붉은 색이 갯가재를 닮았다 하여 가재 버섯(Lobster mushroom)이라 불리는 버섯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손님들이 각종 토산품을 들고 와서 나누어 주는데, 엊그제는 노란 꾀꼬리 버섯이라고 부르는 챈터렐(chanterell) 버섯을 버킷 한가득 가지고 왔다.

즉시 손질하고 소고기와 양파를 볶다가 버섯을 넣고 볶아내니 그야말로 환상의 맛이다. 머지않아 하얀 속살을 자랑하는 고고한 송이버섯이 요염하게 나를 유혹할 테고 가을은 무르익어가겠지?

폭우가 쏟아져도 엎어진 그릇에는 한 방울의 물도 고이지 않는다는데, 이렇게 젖과 꿀이 흘러넘치는 환경에서 누리며 즐기고 살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심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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