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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from glory to glory)성경적 예배 시리즈 (11)
임태집 목사  |  로고스선교회 협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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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14  00: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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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임재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임재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임재는 영어로 “presence”라고 하고, 문자대로 해석하면,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심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주님이 임재하신다는 의미를 찾아보면, 첫째,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셨다(마 28:20). 마태복음 1:23에서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말씀이 마지막에 다시 강조되었다. 둘째, 마태복음 18:20을 보면, 예수님께서 두세 사람이 당신의 이름으로 모일 때 당신께서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을 서로 나누거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곳에 예수님께서 영으로 임재하시겠다는 의미이다. 이 두 구절은 예수님의 속성인 영원한 현존성, 편재성, 무변성을 나타낸다. 셋째, 시편 22:3을 보면, 하나님께서 찬양 중에 기뻐 거하신다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거하신다”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선 “좌정하신다”로 표현된다. “좌정하신다”라는 단어는 현대어가 아니며, 예전에 왕에게 주로 썼던 표현이다. 왕의 신분으로, 왕의 통치권과 권세로 임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한 마디로 표현하는 일은 어렵다. 인간의 언어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언어를 가지고 하나님을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한계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오른팔로 붙드신다는 표현이 있는데 실제로 하나님의 오른팔이 존재할까? 이처럼 인간의 언어로 하나님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굳이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

역대하 5:12-14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각 악기를 다루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레위 사람, 찬양 리더인 아삽의 족속들과 음악을 관장하는 헤만, 찬양대원인 여두둔들이 각기 나팔과 수금을 비롯한 각종 악기를 들고 일제히 연주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의 임재라는 표현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하다”라고 표현했으며, 14절에선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하다”라고 구름에 대해 설명했다. 여기서 하나님의 임재를 영광이란 단어로 표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애굽기 40:34-35에서도 하나님의 임재가 구름과 영광으로 표현되어 있다. 35절에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라고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표현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장면인 이사야 6:3-4절에서는 스랍들과 하나님 주위에 있던 천사들이 하나님을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찬양했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대해 영광이라는 표현을 썼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선택하셔서 임하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에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시 72:19).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계시하면서 동시에 감추고 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하나님의 의와 자비, 하나님의 진노와 긍휼 모두 십자가에 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는 영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바울은 다마스커스 길에서 주님의 영광을 보았다(행 22:6-11; 26:13). 바울은“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라고 증거한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우리들의 마음에 비추어 하나님을 인식하고 알게 하는 지식을 준다.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이에 반응하는 것은 예배와 관련이 있다. 만일 그분의 영광을 보지 못하면 아무런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변형에서 주님의 영광을 보았다(마 17:1-3). 그때 그들은 얼굴을 땅에 떨어뜨렸다(마 17:6). 영광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엎드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었다.

크리스 잭은 “예배는 하나님께 올바른 방법으로 반응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예배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봄으로써 하나님의 아름다움, 선하심, 신실하심, 은혜, 자비를 깨닫기 때문에 매우 자연스럽게 반응할 수 있다. 그래서 제임스 브라이언 스미스는 “우리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의 사랑에 응답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예배의 기본 패턴입니다. 이러한 반응은 예배를 풍성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것보다 하나님의 영광에 반응하길 갈망하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주님을 닮아감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에서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는 수동태이다. 왜냐하면 주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은 성령 안에서, 성령을 통한 주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능력 있는 임재이다.

하나님의 임재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주님을 닮아가게 된다. 곧 성령을 통해 주님의 형상과 같은 영적 성품의 지속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형상과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된다. 모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고나서 더욱 자비로운 사람이되었다(출 34:9). 사울은 다마스커스에서의 주님의 영광을 본 뒤 바울로 변화되었다. 영적 변화는 유일한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리차드 포스터는 자신의 저서인『Celebration of Discipline』에서 “예배가 우리를 더 큰 순종으로 인도하지 않는다면 이는 예배가 아니다. 영적 성품 변화는 영원한 주님 앞에 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는 하나님의 성품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예배 안에 진정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배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가치를 선포할 수 있는 하나님께 대한 응답이고,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행위이다. 예배의 주된 목적이 회중과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예배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성령을 통해 주의 형상으로 변화될 수 있다. 그분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은 점진적인 변화이며(롬 8:29; 갈 4:19; 빌 3:21; 요한1서 3:2),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고후 3:18) 변화의 끝인 그리스도 형상의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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