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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분별 4아, 성경 그리고 분별 (10)
박준형 칼럼니스트  |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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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26  01: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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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시대가 열렸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다시 만나신다. 그의 첫 말씀은, 요한복음 20:21-22에서 보듯이,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이제는 누구나 성령을 받게 되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이제 제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성령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렇다는 것은, ‘누구나’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 스스로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의 중개자가 필요 없게 되었다.

하지만 교회 내 권위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희소식에도 불구하고, 이제 각 개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받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해 그 진위와 출처를 분별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고린도 교회의 경우와 같이 성령의 은사가 도리어 차고 넘치게 됨에 따라, 은사와 은사가 충돌하고 남발되어 교회의 분열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면 이제는 무엇이 진정한 성령의 인도하심인지를 분별해야만 한다.
요한일서 4:1-2의 말씀과 같이, ‘모든 영이라고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영 분별’의 필요가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그 분별의 기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에게 오는 모든 내적인 감동이나 충동이나 은사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분별하는 당시에는 이 분별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 혹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온 것인지를 알기가 무척 어렵다.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렀어도 우리는 여전히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의 분별 수준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늘 말하지만 우리의 이웃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알곡이 아니라 자주 가라지로 변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분별이 성령의 인도하심의 결과인지는 결국 그 열매로 성령의 진위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믿음도 다르지 않다. 존 웨슬리와 함께 복음주의적인 감리교의 기초를 세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조지 휫필드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흙이 얇게 덮인 돌밭 같은 마음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환희로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나무에 열매가 맺히기 전까지는 이들의 행위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열매를 가지고 돌아오는 것을 볼 때까지 나는 그들이 거듭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분별의 진위를 아는 데, 열매가 맺히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불평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영적 성장에는 늘 시행착오가 따르며, 그런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이 모든 과정에 성령께서 늘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영적 감수성으로 이런 열매의 싹이나 시초를 감지해 낼 수 있다. 그것은 우리 마음 가운데에서 흘러나오는 평화와 기쁨과 같은 세미한 감정들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열매가 열리는 시기는 오직 주님만 아신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그 열매가 과연 무엇이냐이다. “분별이 훌륭하면 반드시 그 열매가 좋은 것인가?” 이것은 대단히 풀기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의 신앙은 1+1=2와 같은 수학공식으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분별의 과정이 아무리 훌륭하고 흠이 없어도 그 결과가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마음이 필요하다.

가장 절박했던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의 분별의 결과는 당신의 죽음이었다. 성령의 열매는 분명히 우리의 분별 과정에서 지향해야 할 목표이기는 하나, 당장 그 열매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분별 과정 자체를 중도에 포기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의 목표 달성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이나 크리스천의 분별은 우리가 세상에 사는 한 지속되어야 할 평생의 과제이다. 남들이 성령의 좋은 열매를 맺었다고 해서 샘낼 이유도 없고, 그렇지 못한 자신을 한탄할 필요도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그 결과가 당장 어떠하든지, 주님은 결국 우리를 가장 좋은 곳/것으로 인도하신다는 굳건한 신념과 인내뿐이다.

우리는 ‘성령의 열매’라는 목표에 치우쳐 결과주의자가 되면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동기주의자’이고, 하나님을 통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과정주의자’이어야 한다. 결과는 우리의 몫이 아니다.

우리가 죽기까지 주님을 섬기고 살았는데도 여전히 성령의 열매가 맺히지 않았다 해도 걱정하지 마라! 실망하지 마라! 신실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죽어서라도 그 소원을 들어 주실 것이다. 이게 분별하는 자의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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