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食口)는 함께 밥먹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한 가족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먹을 식(食)에 입 구(口)를 더해, 식구(食口) 인간이 살기 위해 “가장 기본적이고 생리적인 먹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모여 나누는 모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가족은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묘하게 엄마의 맛을 그리워하고, 그 입맛으로 살아가는 구성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 특히 미국에서는 자녀들이 성장을 하면서, 직장을 이유로, 혹은 지리적인 이유로 식구로서 살아가지 못합니다. 아들은 대학을 다닐 때부터 집을 떠났고 지금은 저 멀리 텍사스 주에 살고 있습니다. 딸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기숙사 학교에 다녀 더 일찍 집을 떠났고, 지금은 가까운 시카고에 살고 있지만, 각자의 삶이 있어 함께 식구를 경험하는 것은  일 년에 고작 몇 번입니다.

저희 가족은 얼마 전 결혼 30주년 기념 가족 휴가를 가지면서 식구(食口)를 경험했습니다. 아이들이 결혼하면 처음 얼마 동안이라도 편하게, 즐겁게, 맛있게,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질문을 해봅니다.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의 가족 휴가 첫날, 전통시장인 보케리아 시장터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맛있는 해물 파타스 요리를 먹었습니다. 낙지, 새우, 조개 요리 그리고 하몽이라는 스페인 돼지고기 햄 등을 먹었습니다. 지난 30년 세월을 부부로 살아온 것을 감사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 감사하면서, 스페인에서의 첫날, 역사적인 장터에서 저희 식구는 함께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스페인 여행 중에 식구로서 함께 먹는 음식이어서 맛이 있었습니다.

B.C. 10세기의 역사적 흔적이 있는 골목에서, 12세기의 역사적인 대성당이 있는 지로나(Girona)에서,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소나무가 자라고 짙푸른 파도가 넘실거리고 고운 모래가 있는 해변가, 코스타 브라바 지역 특히 에스카라에서 저희 식구는 맛있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지중해 바다에서 매일 잡은 해물로, 날씨 좋은 농토에서 재배한 야채로 만든 음식은 어느 식당을 가건, 무엇을 먹건 맛이 있었습니다.

지중해 지역은 포도 농사를 짓는 곳이어선 그런지 와인이 주 음료였습니다. 물값보다 포도주가 더 싼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내 생애에 이렇게 와인을 맛있게, 많이, 자주 마시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가족은 끼니 때마다 맛있는 음식과 음료를 마시며 일주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영화 '고령화가족' 한 장면

‘고령화 가족’이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영화 속 한 남자는 넥타이를 매고 출근할 일이 없는 백수입니다. 어느날 백수 생활에 지친 그 남자가 넥타이를 매고 외출합니다. 그 넥타이로 목을 매달아 죽으려는 것입니다. 그 남자가 마지막 순간에 머뭇거리고 있을 때,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옵니다. “집에 와서 밥 먹고 가.” 넥타이로 목을 매려다가 “밥 먹고가!” 라는 엄마의 말 한 마디에 목이 메어서 목을 매달지 못합니다.

밥심이 한 생명을 살렸습니다, “가족은 별것 아니라고, 함께 밥먹는 것”이라고 영화가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가족이지만 함께 밥을 자주 먹지 못하는 미국에서의 현실. 잠시였지만 가족 휴가가 식구를 경험하게 해주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예전의 가족 휴가보다 밥 먹는 시간이 더 길어졌고, 맛있는 밥을 자주 먹었습니다. 함께 밥 먹고, 밥심으로 마음을 모으고, 밥 먹는 이야기로 가족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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