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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
최태선 목사  |  어지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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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01  01: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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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이사야 10:20-23).

이재철 목사는 그의 책 『성숙자 반』에서 믿음은 약속어음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예를 들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은 현찰이 아니라 약속어음이었다고 말합니다. 약속의 아들, 이삭이 태어나기까지 장장 25년이 걸렸습니다. 이삭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어 큰 민족을 이루기까지 수백 년이 걸렸습니다. 출애굽 후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데 40년이 걸렸습니다. 이 목사는 약속어음을 주고받는 사이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고 설명합니다.

믿음이란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베풀어 주신 것 때문에 하나님을 지금도 신뢰하며, 미래에도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믿음이란 앞을 내다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은 인간의 바람이 아니라 믿음에 기초한 미래에 대한 확신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을 신뢰한다는 것이며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그분의 약속을 신뢰한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한다는 것은 약속의 성취를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닻을 내리며 미래에 대해 이같이 확신하는 것을 성경은 소망이라 일컫습니다.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의 삶을 통해 영광을 드러내시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드러내 믿음을 완성하시며, 당신의 약속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게 하심으로 소망을 완성합니다.

이제부터 그러한 믿음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존재해 왔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믿음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대다수에게서 일관된 믿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보기란 힘듭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믿음이 어떻게 그리고 누구를 통해 유지되고 전달되었는가를 살펴볼 것입니다. 그러면 새 이스라엘인 이 시대의 교회 모습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전 538년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청산하고 귀향길에 오릅니다. 감격스런 귀환이었습니다. 믿음이 주는 교훈을 배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소망을 품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이 교훈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터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을 기꺼이 그리고 전적으로 신뢰하는 백성을 창조하시기 위해 계속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역경 속에서 자신들의 창조주이시며 공급자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의 실패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믿음의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출애굽 직후 광야에서의 이스라엘뿐 아니라 약속의 땅에 도달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끝없이 흔들렸습니다. 유혹이 밀려올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다른 신들과 세상의 좋아 보이는 것들을 추종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드러난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 중 남은 자들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다는 사실입니다(시 106:6-43, 렘 7:23-26, 겔 20:5-31).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경고하셨듯이 이스라엘은 언제나 “패역한 백성”이었습니다(겔 2:3). 출애굽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상황적으로는 노예 생활에서 구원하셨지만, 영적으로는 죄의 노예 상태에서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신 29:4, 사 6:9-10, 롬 11:7-8, 고후 3:14). 급기야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듯이, 불신에 대한 형벌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에서 추방하셨습니다. 시내 산 언약 또한 깨진 것입니다(출 16:28, 32:1-20).

하지만 아담과 하와에게 옷을 입히시고 여자의 후손을 통해 구원을 약속하신 것처럼(창 3:15,20), 바벨론 포로 생활 또한 이스라엘 역사의 종지부를 찍는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체험을 통해 우리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언약을 파기한 후에 처음으로 선언된 진리, 곧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다”(시 103:8)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도 하나님은 심판이 아니라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은 이스라엘을 멸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패역하였기에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보존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바벨론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

그러한 와중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안에 신실한 소수를 남겨 두셨습니다. 그들을 통해 당신의 약속을 이어가셨습니다. 불신이라는 죄에서, 불신으로 야기된 자멸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렘 31:1-40, 겔 36:22-38).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는 이스라엘을 깨끗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사 48:9-11). 바벨론 포로 사건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진노는 “남은 자들”을 불러 깨끗케 하였고, 그들의 믿음을 튼튼하게 세워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들어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반역한 무리들이 회개하면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사1:19-27, 미 7:18-20).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회개와 관계없이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남겨두십니다. 그들이 바로 남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신실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소망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남은 자들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이지만 그들이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남은 자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남은 자들을 제외한 이스라엘은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습니다. 그들은 파멸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예정인 것입니다.

예레미야도 똑같은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내가 내 양 떼의 남은 것을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이 생육하고 번성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어버리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3:3-4).

하나님의 역사는 이렇게 인간의 잘잘못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섭리와 일하심을 통해 이어집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남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새롭게 창조해나가십니다.

남은 자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귀환했을 때 조국의 상황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것과 전혀 달랐습니다. 538년의 귀환은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방의 왕인 고레스의 정치적 책략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슥 1:1-4, 사 44:28-45). 그들의 귀환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제1차 귀환이 너무 미미했기에 에스라는 그보다 더 많은 무리를 이끌고 2차 귀환에 오른 스룹바벨에게 자신의 권한을 넘겨 주어야 했습니다(슥 1:11-2:2).

하나님께서 찬란히 빛나는 독립국가로 세우셔서 이방 민족들을 다스리게 할 것이라는 기대는 보잘것없는 도시국가를 세우는 것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것도 주변 세력들과 투쟁을 벌인 끝에 폐허 위에 간신히 세워졌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바사 제국에 기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현실은 약속과 너무 달랐습니다. 해가 갈수록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었으며, 공동체의 사기는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며 이스라엘 예배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성전 재건 사업도 22년 동안의 온갖 고생 끝에 주전 516년에야 가까스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이고 초자연적인 개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바사 제국의 도움을 통해서였습니다(슥 6:1-12). 솔로몬 성전을 익히 알고 있던 사람들은 새 성전의 규모가 너무 보잘것없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습니다(슥 3:1-6).

그런데 예루살렘은 어수선하고 새 성전은 보잘것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개와 스가랴와 같은 예언자가 나타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버리시지 않았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언자들은 아직도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고 선포했습니다(학 2:5). 학개 선지자는 조금 있으면 하나님께서 땅과 모든 나라를 진동시키시고 모든 나라의 보물을 성전에 들이실 것이며 그 성전을 솔로몬의 옛 성전보다 더욱더 영광스럽게 하실 것(학 2:6-9)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스가랴도 같은 예언을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무리들은 소수였지만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학 1:12-14). 현재의 상황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케 하지만 하나님은 약속을 잊지 않으셨습니다(슥 8:2-8). 믿음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의 하나님의 백성 이야기는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역경 중에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려는 처절한 투쟁을 기록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학 1:1-2:9, 슥 1:16, 4:6-10, 6:15). 한쪽에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고, 다른 쪽에는 이러한 약속을 의심케 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약속을 지키기 시작하셨습니다. 백성들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으며, 성전이 건축되었고, 예루살렘은 차차 안정을 되찾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증거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을 부분적으로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중에 신실한 남은 자들은 믿음을 이어갔습니다. 상황을 바라보고 믿음을 저버리기보다 기대의 방향을 미래로 바꾸었습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들로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 불완전하게 성취될지라도 훗날 완전하게 성취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습니다”(히 11:13).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은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에 기초합니다. 따라서 믿는 자는 현재 성취되지 않은 약속들이 미래에는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새롭게 가져야 합니다. 약속은 성취될 것입니다. 오늘이 아니라면 내일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경을 당할 때 소망은 “영혼의 닻”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한 확신이 서면 현재의 고난을 인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소망을 갖는 것은 순진해서가 아니라 “믿는 자를 알기” 때문입니다(딤후 1:12). 그런 까닭에 이스라엘의 역사는 여호와를 변함없이 믿으라고 촉구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일하셔서 백성들에게 믿음과 소망을 가르치셨듯이, 지금도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자를 창조하는 일을 계속하십니다. 십자가 이후의 그리스도인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 이후의 남은 자들처럼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모든 것이 성취될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겪는 시련은 장차 다가올 하나님의 구속을 더욱 사모하게 만듭니다. 고난은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리고 저 세상으로 우리의 시선을 향하게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며 우리 앞에 놓인 것을 굳게 확신할 때 고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4)는 약속을 신뢰할 수 있는 발판이 됩니다.

이사야 10:20-23에서 기억해야 할 단어는 남은 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길에 들어섭니다. 하지만 모두 다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은 아닙니다. 상황이 어려워지고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늦어지는 것처럼 보이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섭니다. 믿음의 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안전을 추구하며 자기의 욕망을 좇는 이들은 패역한 백성이 되어 파멸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오직 소수의 남은 자들만이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약속을 소망으로 바라보며 믿음의 길을 달려갈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은 자로 기록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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