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일반적으로 영웅이란 남다른 용기와 재능, 지혜로 보통 사람들의 영역을 뛰어넘는 비범한 사람을 뜻한다.  이 정의에 의하면 영웅의 삶이란 살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 났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황혼기에 나 자신을 돌아보며 진정한 영웅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아가는 사람인가 하는 질문을 새삼스럽게 해 본다.

올해는 인간이 우주선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착륙한 지 만 50년이 되는 해이다.  이 우주선의 세 명의 비행사 중 달을 밟지 못했던 마이클 콜린스는 내 주의를 끌었는데, 두 명의 동료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기는 동안 그는 우주선의 궤도비행을 계속했다.  달을 밟지 못해 섭섭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한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겸손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의 저서 『달로 가는 길』 의 서문에서 그는 영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영웅은 많지만 우주 비행사는 영웅이 아니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의식을 잃었을때 인공호흡을 해주는 행인, 출혈이 난무하는 응급실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간호사, 동지들을 구하기 위해 수류탄 위로 몸을 던지는 군인… 이런 분들이 영웅이며, 영웅으로 대해야 한다.”

나는 콜린스의 말에 동의한다.  타인을 위해 자기 자신을 어떤 형태라도 내어주고 희생을 감수하는 삶이 영웅적 삶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서도 이러한 삶을 사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사회에서 소외 당하는 연약한 장애우들을 사랑하여 20대 청년이 신학대학 재학시부터 거의 40년 가까이 연약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K목사.  아무도 이분을 영웅이라 부르지 않지만, 자기 자신을 죄인들을 위해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이분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그에게 영웅 칭호를 붙여 주고 싶다.  K목사의 그런 모습은 결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에는 600여 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튼 칼리지 고등학교가 있다.  지금까지 19명의 총리를 배출한 이 학교는 자기밖에 모르는 엘리트를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정신은 학생들의 마음에 각인된 “약자를 위해”, “시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라는 글귀에 잘 나타나 있다.

졸업식 송별사에서 한 교장은 “우리 학교는 출세하거나 자신만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주변을 위하고 사회나 나라가 어려울 때 제일 먼저 달려가 선두에 설 줄 아는 사람을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만일 우리 나라에도 이러한 정신으로 장래 지도자를 키우는 학교가 있다면, 이기주의가 팽배한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얼마 전 한국일보에 소개한 바 있지만, 가정의 비극을 사회봉사로 승화시켜 활동하고 있는 고등학교 동기 K형이 있다.  학교 폭력을 견디지 못해 고등학생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뼛속 깊이 쓰라린 아픔을 겪은 후, K형은 다시는 그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염원하며 잘 나가던 직장을 사임하고 사재를 털어 27년 전 푸른나무 청예단(청소년 폭력예방 단체)을 설립하여 온 몸을 던져 활동하고 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같은 일이었지만, 관계기관의 냉대와 백안시, 자금 문제, 개척자의 외로움과 고뇌를 이기고  이 재단은 이제 뿌리를 깊게 내려 열매를 많이 맺었다.  올해 9월 9일에는 한국인으로는 16번째로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 상을 수상하는 영에를 얻었다.  “학교 폭력으로 자녀를 잃은 아픔을 이겨내고 학교 폭력 예방과 비폭력 문화 확산에 힘쓴 공로가 있다”는 것이 수상 이유이다.

본인의 슬픔을 뛰어 넘어, 아들이 당한 비극으로부터 수많은 청소년들을 구해 내기 위해 오늘도 혼신을 다하고 있는 K형!  이 친구의 희생의 삶이 나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기에 나는 그를 영웅이라 부른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