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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 한 가지 - 하나님과의 친밀함성경적 예배 시리즈 (12)
임태집 목사  |  로고스선교회 협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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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16  05: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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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친밀함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얼마나 실체로서 존중하고 경험하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짓는다. 그분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많이 갖고 있더라도 실제적인 만남 속에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면 그것은 참된 복음이 아니다.” 리폼드 신학교의 스티브 브라운 설교학 교수가 은퇴한 후에 출간한 책『What Was I Thinking? : Things I’ve Learned since I Knew It All』(다 알았다고 생각한 이후 내가 배운 것들)에서 고백한 글이다.

참된 복음에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만남과 관계가 중요하다면, 복음적인 참된 예배에도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교제가 필수일 것이다.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 되시고, 우리가 자녀로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에서 오는 기쁨과 만족은 자녀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무엇인가? 친밀함의 관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 첫째,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것이고, 둘째,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을 보이는 것이며, 셋째, 가장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고, 넷째, 언제나 서로 교감하는 것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세아 6:3)라는 말씀에서, “알자”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야다”이다. 이는 부부가 경험적으로 서로를 잘 알아가는 것처럼, 전에는 남이었지만 부부가 되어서 서로의 허물을 보게 되고 남모르는 비밀을 서로 잘 알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아 가는 것을 의미한다.

캐나다의 신학자인 패커(J. I. Packer)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안다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면의 최악을 미리 다 알고 계시므로, 나에 대해 어떤 새로운 면을 발견하셔서 환멸에 빠지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라며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 계신 그리스도(베르메르, 1656)

좋은 것 한 가지

누가복음 10:38-42에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가 나온다. 마리아의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한 마디로 열심파였다. 그녀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집으로 초청했다. 예수님과 같이 다니던 제자들만 열두 명이 넘었을 텐데, 집이 크지 않았다면 앉을 자리도 없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을 다 섬기기 위해, 마르다는 정신없이 바빴을 것이다. 마르다가 한창 바쁠 때 그녀의 동생 마리아는 뭐하고 있었는가?

성경에 따르면,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 앉아 그분만 바라보며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다. 너무나 바빴던 마르다는 마리아에게 도와달라고 말했을 것이다. 마리아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마르다는 예수님께 마리아로 하여금 자신을 돕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 10:42)라고 말씀하셨다.

한글 개역개정판에는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ESV 영어성경에는 “but one thing is necessary”라고 번역되어 있다. 여기서 한 가지(헤노스)는 “하나, 풍부히”라는 뜻으로 한 가지이지만 풍족하다는 말이다. “많은 일을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보다 한 가지 좋은 편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사실 마르다의 동기는 순수했고 열심이 있었지만 마리아의 선택을 빼앗을 수 없었다. 그 빼앗을 수 없는 선택은 예수님 발 앞에서 그분과 교제하는 친밀함이었다.

친밀한 예배

신약의 대표적인 예배용어인 “프로스쿠네오(proskuneō)”는 예배를 암시하는 입맞추다라는 의미이며, 신약성서에서 54절에 걸쳐 65번이나 쓰였다(마 4:10; 눅 24:52; 요 4:20, 21). “프로”는 “어디를 향해서”라는 뜻이고, “스쿠네오”는 입맞춤이라는 뜻으로, 복종과 경외에 대한 표현이면서 동시에 친밀한 관계를 의미한다.“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시 25:14)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와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스펄전 목사는 “하나님을 아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강력하게 사모하는 심정으로 그리스도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치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런 소원을 가지고 있다면, 주님을 만나길 원하고 그분의 성품을 더 알기를 소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주실 것입니다. 만일 갈망하고 울부짖으면서 주님을 찾는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은사요, 그로 인해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갈망하며 사모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예배에서 기도로 하나님을 찾고 구하면 만나게 될 것이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면 그분과의 친밀함이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과 친밀한 예배를 위해 찬양할 때나 기도할 때, “예수님,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처럼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화법이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구하는 예배에서 중요하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직접 화법(direct address)으로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라고 노래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인격체되신 하나님께 찬사를 보내고, 자신의 사랑을 고백했다.

요한계시록 4장을 보면,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있는 24장로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면류관을 던지며 이렇게 하나님을 경배한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11절). 24장로들은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며 하나님과 대화하듯이 고백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을 향해 마음의 중심으로부터 진실하게 그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나님을 원한다고, 얼굴을 보며 대화하듯 고백한다면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파도처럼 밀려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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