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줘!” 부엌의자에 앉자마자 배가 고픈 탓에 여과시켜 볼 사이도 없이, 내 본능이 조종했을 말, 거침없이 높은 소리가 되어 입 밖으로 튀어나왔던 것이다.
입을 떠난 어색한 말은 서걱거리며 귀에 내려앉았다. 참으로 내 입이 만들어낸 소리란 말인가? 어릴 적엔 혹 사용했을 수도 있는 말. 그러나 사용했던 내 모습은 기억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의사 전달도 있었던가? 나도 ‘밥과 줘’를 사용해서 문장을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 더 낯설게 들렸던 것이다.
두 눈은 스스로를 진정시키려고 팔목 보호대 안에 웅크리고 있는 오른손과 가운데 손가락을 반창고의 보호에 맡기고 있는 왼손을 내려다 보았다. 낯설기만 한 한 마디를 사용해도 괜찮다고 편들어 주고 싶은 자구책이었다.
지난 토요일, 점심을 좀 과식한 듯해서 오후 산책을 했다. 팔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도 골목의 나무들은 풍성하기만 했다. 하루 중 가장 뜨거운 햇빛을 받는 시간이지만 지칠 줄 모르고 신록을 자랑하며 가벼운 바람과 함께 춤을 추며 싸르르 싸르르 노래를 했다.
하늘! 얼마나 흥미로운가! 아침과 저녁이 다름은 물론,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표정. 똑같은 하늘은 찍힌 사진 안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않은가! 변화무쌍한 하늘을 살피는 일은 참 즐겁다. 그때도 여기저기에 흰 구름을 뭉텅뭉텅 안고 내 눈길을 놓아 주질 않았다. 한참을 하늘, 구름, 나무와 함께 행복했던 나는 예기치 못한 일을 당하고 말았다.
길은 언제나 탄탄대로라고 방심했던, 아니 안전하지 아니하리라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 선전포고도 없이 공격을 감행해 버렸다. 발부리가 닿은 그 앞에 시멘트가 갈라져 솟아올라 있었던 것이다. 배신의 자세, 그 미동도 없던 덫에 걸려 난 여지없이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곤두박질을 해버렸다. 대낮에 대로에서 큰대자로 넘어지고 말았다. 수북하게 부어오른 오른쪽 어깨는 욱신거리고, 쓰라리고, 팔을 위로 처들 수 없었다.
액스레이 검사 결과, 쇄골에 금이 생겼고, 특별한 의학적 조치는 없다고 했다. 단지 자체 치유를 위하여 4-6주의 보호 기간이 필요하며 심하게 팔을 쓰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다. 그 오랜 기간 팔을 크게 움직이지 않게 삼각보를 매고 다녀야 했다.
의사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움직일 수 없다면 모를까, 아줌마라는 특별한 직책을 맡은 난 불편한 어깨 때문에 어둔한 팔을 사용하여 반찬을 만들어야 했다. 어설프게 칼질을 했다. 자연스럽지 않은 동작 때문에 왼손의 가운데 손가락을 베고 말았다. 눈 깜빡할 사이에 양손을 붙들어 매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고픈 배는 한 치의 봐주기도 없이, 본능을 시켜 그 낯선 말을 하게 했던 것이다.
난 ‘밥 줘‘ 의 효력을 익히 알고 있다. 주부로 살아온 그 많은 시간, 식구들의 입에서 이 말이 쏟아질 때마다 얼마나 바동거렸던가! 얼마나 기쁘고도 바쁘게 몸을 놀렸던가! 복종만이 필요한 명령이요, 주부의 직책을 잘 수행하지 못했음을 자책해야하는 말이기도 했다. 가장 많이 들었고, 가장 쩔쩔맸던 말, 그러나 긍지와 어려움이 섞인 반가우면서도 고단한 말, 아이러니하게도 내겐 사용불허의 말이었다.
본능은 작은 망설임도 없이, 입안에서 ‘밥 줘’를 주인으로 만들어 당당하고 또렷하게 공기 속에 퍼트렸던 것이다.
놀랍게도 당당했던 나의 말 ‘밥 줘!’의 위력을 보고 말았다. 흠칫 놀라 입을 벌리고 바라보던 남편의 손과 발이 바빠졌다. 잠시 후, 아직도 양손을 번갈아 보고 있던 내 앞에 접시 하나가 불쑥 등장했다. 밥, 김치, 멸치볶음, 깻잎장아찌가 얌전하게 올라 있었다. 남편이 서둘러 옆 의자에 앉았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밥을 가득 뜬 숟가락, 그 위에 잘 삭혀진 넓은 깻잎 한 장을 겹친 부분이 있을세라 조심조심 정성을 다해 펴서 덮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불편함 속에다 일생 동안 써보지 못한 말을 찾아내는 신비한 경험을 넣어 놓으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