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안수 50년을 맞는다.

10대 초반에 예수를 영접하고 그때부터 목회자 되기를 결심한 후 마음에 변화를 일으킨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렇게 목회자가 되기를 열망했던 것은 남다른 믿음이 있어서도 아니었고 가문의 독려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어린 마음에 목회자들의 생활 모습에 막연한 매력을 느꼈던 것으로 생각되며, 경제적인 문제와 건강 문제 때문에 일반 대학에 갈 수 없는 처지였기에 신학교 대학부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부 2년과 신학부 3년을 마치고 인턴격인 전도사로 2년간 시무하다가, 목사고시를 치르고, 1969년 11월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신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성경 공부를 통해서 안수의 뜻이나 의미를 알기는 했지만, 실행 여부에 있어서는 부족했던 점이 너무 많았다.

성경에서 최초의 안수는 출애굽기 29장 10절에 기록되어 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송아지 머리에 안수를 했다. 그리고 그 송아지를 회막 문에서 죽이고, 그 피를 단 뿔에 바르고, 남은 피를 전부 단 밑에 쏟았다. 또한 내장과 기름을 단 위에서 불사르고, 고기와 가죽과 똥을 진 밖에서 불살라야 했다. 이후로도 안수를 받은 짐승들은 모두 죽이고 각을 떠야 했다. 심지어 제물이 새 종류일 경우에도 목을 비틀어 목숨을 끊고 제물로 드렸다(레 1:14).

안수는 사람에게도 했는데, 첫번째 안수의 대상은 하나님을 저주한 사람으로, 그 사람을 죽이기 전에 회중이 안수를 했다(레 24:14). 그 다음에 안수를 받은 사람들은 레위인이었고, 또한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를 했다(민 8:5-11, 신 34:9). 사람에게 안수를 하는 것은 “여호와를 봉사케 하기 위함”(민 8:11)이라고 했으며, 신약에서는 ‘성직 위임과 치유’(행 6:6, 막 6:5, 눅 4:40)를 위해서 안수했다. 따라서 금일에도 교회에서 목사, 장로, 집사들을 안수하는 것은,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으로 하나님을 봉사케 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필자는 만 27세도 안 되었을 때 목사 안수를 받았다. 사회 물정을 모르고, 교회 사역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했던 터라, 실수에 실수를 거듭하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후회되고 안타까웠던 일은 때때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곁길로 나가 살얼음을 걷는 위기가 많았던 것이다. “불법과 죄를 사함받고 가리움을 받아”(롬 4:7)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은 천만 감사한 일이지만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렘 17:9)이라 했듯이, 멸망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던 적이 많았음을 숨길 수 없다.

그럼에도 부름을 받아 목사 안수 50주년을 맞게 되어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가족 관계로 보나 사회적으로 보나 쓸모가 없었고, 때로는 가까운 이웃에게 혹은 교회 안에서 환영을 받지 못해 외톨이 인생을 살기도 했는데, 큰 손(민 11:23)에 등을 떠밀려 오늘에 이르지 아니했나 생각된다.

요즈음 남은 삶이 많지 않음을 자주 실감한다. 이제야말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했던 사도 바울의 결심대로 살기를 소망한다.

아직까지 달려가고 있는 사역에 크리스찬저널, 기독의료상조회, 로고스하우스(라모나쉼터) 등이 있다. 최근에 허락하신 새 사옥에는 사역을 더 확장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이 분명하다.

아직 완전한 제물이 되지 못하고, 성화되지 못한 옛 사람 때문에 아픔과 갈등을 겪는다. 그러나 남은 생애 동안만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갈 2:20)이라 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완전한 산 제물(롬 12:1)이 되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만 따르는(마 16:24)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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