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 그림

우리 어릴 적 작두질로 물 길어 먹을 때
마중물이라고 있었다.

한 바가지 먼저 윗구멍에 붓고
부지런히 뿜어 대면
그 물이 땅 속 깊이 마중 나가
큰물을 데불고 왔다

마중물을 넣고 얼마간 뿜다 보면
낭창하게 손에 느껴지는
물의 무게가 오졌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마중물이 되어준 사랑이
우리들 곁에 있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무저갱(無底坑)으로 제 몸을 던져
모두를 구원한 사람이 있다

그가 먼저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기에
그가 먼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꿋꿋이 견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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