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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구유 앞에서
허영진 목사  |  revhu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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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07  05:4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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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성탄 시즌이면 “34가의 기적”이라는 영화가 상영됩니다. 백화점에서 산타클로스 역할을 맡은 노인이 자신이 진짜 산타라고 주장해서 문제가 법정까지 번지지만. 산타의 존재를 믿는 어린 소녀의 순진함이 결국 행복한 결말을 가져온다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어린 조카가 말했습니다. “엄마 선물을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갖다 놓고 산타 할아버지가 갖다 주었다고 할래요.” 이모가 물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고 믿니?” “난 안 믿지만 엄만 믿거든요.”

성탄이 되면 아이들은 산타가 정말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이 물어야 할 질문은 “성탄의 메시지를 믿느냐?” 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성탄을 축하합니까?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생활이 좀 나아지기라도 합니까? 성공이나 출세에 도움이 됩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소원을 뚝딱 이뤄 주는 마술사가 아닙니다. 그는 우리가 허덕이며 지고 가는 무거운 인생의 짐을 훌떡 벗겨 주지도 않으십니다. 성탄 메시지의 핵심은 그보다 훨씬 더 심오하고, 고상하고, 근원적인 데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세상은 무지와 미움과 분쟁과 가난과 억압과 착취가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어둡고 병든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치적 투쟁이나 혁명으로 복지사회를 건설하는 개혁자가 되려 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세상이 무지하고 혼란스럽고 괴로움이 가득해도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러 오신 분입니다. 환경과 형편이 어떠하든지 인간은 사랑받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이는 것이 예수님의 목적이요 역할이었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가 말구유 앞에서 당신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길 원하십니다.

성탄 메시지는 우리가 아무리 연약하고 고통 중에 있다 해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선언합니다. 우리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든지 상관없습니다. 어떤 불행, 어떤 고난, 어떤 문제 속에서도 사랑은 자라날 수 있고 그 어떤 장애물도 뛰어 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동화가 있습니다. 작은 물고기가 맛있어 보이는 지렁이를 덥석 문 순간 낚시 바늘에 걸려 낚시꾼의 보트 위에 던져졌습니다. 낚시꾼들의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쑤시개만한 놈이야.” 낚시꾼들은 한바탕 웃더니 작은 물고기를 연못에 던져 버렸습니다.

작은 물고기는 놀림감이 된 것이 분했습니다. “좋아. 이 연못에서 제일 큰 고기가 되고 말거야.” 작은 물고기는 닥치는 대로 먹었습니다. 자꾸 자라났습니다. 마침내 연못에서 제일 큰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낚시꾼들이 다시 왔습니다. 큰 물고기는 서슴지 않고 미끼를 물었습니다. 드디어 자신이 1등이 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낚시꾼들이 이렇게 큰 고기는 본 적 없다고 감탄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이젠 아무도 날 비웃지 못할 걸.” 낚시꾼들을 죽은 고기를 박제로 만들어 나무판에 고정시켜 벽에 걸었습니다. 밑에는 이런 쪽지를 붙였습니다. “올해 최고의 물고기.”

제일 커야 하고, 가장 높아야 하고, 항상 1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기기 위해 필요하면 낚시 바늘보다 더한 것이라도 삼킬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슬픈 일입니다. 패배자와 꼴찌가 되지 않으려면 낚시 바늘도 삼켜야 한다는 가치관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그러나 성탄 메시지는 누가 패자이고, 누가 진정한 승자인가를 명백하게 말해 줍니다.

예일 대학 문학부의 에인 랜드 교수는 “현대인의 태도를 성경에 비추어 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버지 용서하소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을 용서하소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주소서.’”

이 시대의 표준을 따르면 승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말도 듣기를 바라지 않는 자입니다. 반면에 패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말인가를 항상 듣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구유 앞에 겸손하게 섭니다. 성탄 메시지를 받으려고 귀를 기울입니다. 스스로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남을 위해 해준 일은 잊어버리고, 남이 나를 위해 해준 일은 기억하기를 바랍니까?

세상이 내게 진 빚은 잊어버리고, 내가 세상에 진 빚은 잊지 않으려고 합니까?

내 권리는 뒤로 미루고, 내 책임을 앞세우기를 기뻐합니까?

내 목표가 인생에서 무엇을 취하려는 것이 아니고, 인생을 위해 무엇인가 보태려는 것입니까?

일등이 되려고 낚시 바늘이라도 삼키려고 두리번거리는 것이 아니라, 화해와 용서와 선의의 씨앗을 심기 위해 항상 주변을 살피는 삶의 자세를 가지려고 합니까?

이와 같은 소망이 여러분의 심령에 있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오늘의 승자입니다. 그리고 성탄의 참된 축복이 여러분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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