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저널
> 신학·영성 > 성경 | 성구 명상
하나님의 행복
최태선 목사  |  어지니 교회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11.12  02:48:2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28).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온갖 신기루들을 좇느라 삶을 허비한 후에야 진리의 소중함을 깨닫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일단 인생의 허상을 좇기 시작하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복음의 복됨을 외쳐도 그걸 복음으로 듣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사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해 나 몰라라 합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굴복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머릿속으로는 이해하지만 우리의 삶이 되는 건 어렵습니다. 여기에 신앙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은 창조 과정을 묘사하면서 창조주와 피조물을 어떤 식으로든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관점은 이와 다릅니다. 고대 세계의 창조 신화에서는 세상을 신들의 연장으로 봅니다. 창조 세계를 신의 구현으로 봅니다. 세상을 창조한 신들은 세상의 일부로 세상 안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견해를 따라 뉴 에이지 운동에서도 세상과 하나님을 동일시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으신 전능하신 창조주로서 창조 세계와 구별되며 창조 세계 밖에 존재하십니다. 성경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시기 위해 단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세상은 영원히 창조주와 구별됩니다. 우리는 창조 기사를 통해,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스스로 존재하시며, 홀로이시며, 스스로 충만하신 창조주”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내면의 자아가 하나님과 접촉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만 존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어디에나 존재하십니다. 그것을 신학적으로 Omnipresence, 편재성이라고 합니다. 그분은 피조 세계를 넘어 초월적으로 존재하십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 내재하시면서 동시에 초월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신비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고 해서 그분의 존재가 우리 안에 한정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내재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저 멀리 계시는 분, 그것이 바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입니다.

빛의 창조로부터 시작해서 생물의 창조로 나아가는 창조의 순서를 보면, 창조 세계의 기능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생명을 이어가는 데 적합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물은 창조의 최고 절정인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이 창조 질서의 한 부분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에 침팬지와 같은 종류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창조 질서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상은 나머지 피조물과 다릅니다.

우리가 참나무를 보살피는 것은 우리가 참나무와 같기 때문이 아니라, 우주 만물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통치자에게 복종하기 때문입니다. 왕이신 그분은 우리에게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다른 피조물과 관계를 맺을 때 사용하는 ‘청지기직’이라는 용어는 적절한 개념입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청지기가 주인의 이름으로 주인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분의 신하 혹은 종으로 창조된 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 지으신 창조 세계를 그분이 주신 지혜와 보살핌으로 다스릴 때 그분의 성품과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신뢰한다는 표시로 세상을 보살펴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을 돌보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하찮게 여기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책무를 소홀히 하는 것은 우리의 공급자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세상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신 후에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공급하신 것을 이렇게 묘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식량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이 필요한 식량을 이미 주셨기 때문에 세상을 다스리라는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인간의 다스림은 인간이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음을 나타내며, 그분께 의존할 때 공급자이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31)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세계가 심히 좋았던 것은 창조가 의도했던 즉각적인 목적, 즉 인간을 위해 여건을 조성하는 일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궁극적인 하나님의 목적, 즉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일 또한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모든 것을 그분의 뜻대로 할 수 있음을 나타낼 뿐 아니라 그분의 사랑의 위대함을 드러냅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 45:18).

창조 세계 자체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신성을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인간이 거처할 곳으로 만드신 것은 그분의 주권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인간은 창조주이자 공급자이신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림으로써, 이 같은 사실을 인식하고 체험할 수 있는 피조물입니다. 우주 만물이 인간을 위해 지어졌지만,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 8:3-9)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만 존재가 지속됩니다.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은 곧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인간이 다스리지 않으면 창조 세계는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반역하여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절의 변화와 추수가 가능한 것은 하나님의 자비 때문입니다. 인간은 죽어 마땅한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창조 세계를 유지하겠다고 기꺼이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창 8:20-22)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십니다”(마 5:44-45).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당신께서 지으신 창조 세계가 심히 좋았다고 선언하십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주권을 행사하고,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 창조주 덕분이라고 인식했습니다(창 2:16). 인간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부여하셨기 때문에 존재하며, 하나님께서 식량을 주셨기 때문에 존재가 지속됩니다. 이것이 심히 좋은 까닭은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선물이며, 우리가 힘과 안정을 누리더라도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해야 살 수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 100:3)

하나님을 거역하는 현실에서 이것만큼 현대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소유일 뿐 아니라 그분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으며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환상은 뿌리째 흔들립니다.

이 같은 환상은 인간 창조를 부인하는 사상, 곧 우주는 어쩌다 생겨났으며 인간은 시간과 우연의 산물로 이 땅에서 진화해 왔다는 주장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할 필요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충족과 행복을 위해 세상이나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행 17:24-25).

성삼위 하나님은 홀로 완전하시며, 성부 성자 성령의 영원한 결합에서 비롯되는 교제와 사랑을 통해 행복을 맛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것은 충만함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하신 것은 창조 세계가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낼 뿐 아니라 피조물인 인간이 모든 것을 그분에게 의존함으로써 세상이 그분의 본래적 영광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공급자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그분께 의존할 때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찬란히 빛납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시 24:1-2).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로서 그분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홀로 그리고 당신의 영역 안에서 행복을 찾으십니다. 오직 이런 의미에서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행복을 확대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지으신 창조 세계가 지속되기에 큰 기쁨을 맛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라고 친히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삼위일체가 누리는 복을 창조 세계가 공유하여 자신의 기쁨을 더하는 데 있다. (중략)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인간에게 선을 베풀 때 더 없는 만족을 느끼신다.”(다니엘 풀러)

“하나님의 행복은 피조물인 인간이 그분의 위대하심을 찬양할 때 울려 퍼지는 기쁨을 맛보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존 파이퍼)

최태선 목사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Dictionary.com, 2019 올해의 단어 “existential”
2
오해
3
기독교 영화 '오버커머' 브라질에서 2위 기록
4
크리스마스 퍼레이드와 윈터 퍼레이드
5
런던 브리지 테러범은 가석방 중인 테러 전과자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235 N. Elston Ave., Chicago, IL. 60630  |  Tel: (773)777-7779  |  Fax: (773)777-0004  |  청소년보호책임자 : SAMUEL D PARK
Copyright © 2013 The Korean Christian Journal. All rights reserved. mail to kcj@kcj777.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