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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하나님은 언제나 주시는 분이다. 우리는 언제나 받는 자이다."
최태선 목사  |  어지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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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03  04:2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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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사도행전 17:24-25)
“(...)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우리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주의 백성의 심중에 영원히 두어 생각하게 하시고 그 마음을 준비하여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오며 또 내 아들 솔로몬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사 주의 계명과 권면과 율례를 지켜 이 모든 일을 행하게 하시고 내가 위하여 준비한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라 다윗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라 하매 회중이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고 머리를 숙여 여호와와 왕에게 절하고”(역대상 29:6-20).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하나님을 위해 헌금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하고, 교회를 위하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선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대개는 편안을 넘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 일들이 그 사람의 평생의 자랑이며 업적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럼 사람들이 대개 하나님이 인간의 봉사와 도움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순종이 됐든 돈이 됐든 시간이 됐든 하나님께 바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노를 발하실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업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님께는 우리가 필요 없다. 성경이 말하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행 17:25).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직접 주신 분이다. 사람이 그분에게 무엇을 드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 11:36).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시다. 우리는 그분에게 아무것도 드릴 수 없다. 이미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충만하신 그분의 존재에 우리가 보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진리는 이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심으로써 최고의 기쁨을 누리시는 분이다.”

오늘날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그분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할 때가 아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그분만이 주실 수 있는 자비와 선하심을 받는 그때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때이다. 그분으로 인해 우리가 기쁨을 느낄 때가 그분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때라는 말이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실제로 그분의 영광을 가리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 그분께 무언가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우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봉사나 도움이 필요 없다. 반대로 우리는 그분의 도움이 필요하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우리가 그분의 은혜를 입고 그분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존 파이퍼 목사는 이렇게 지적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님을 뇌물로 유혹하거나 강요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신이나 나나 어떤 인간이나 상황이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든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거나 하신 일에 대한 반작용일 뿐이다. 만유의 근원이신 그분은 천사나 인간의 섬김에 구미가 당기거나 그로 인해 더 부유해질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섬김이 필요 없다. 이 사실은 자기 자신을 믿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보려는 사람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과 흥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과 흥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우리는 그분과 거래할 수 없다. 우리가 무엇을 먼저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빚진 분으로 만들 수 없다. 우리가 무언가를 드림으로써 그분의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없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다는 평을 들은 이스라엘의 다윗 왕은 수많은 전쟁에 승리하고 평화의 시기를 맞았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위해 성전 짓기를 원했다. 그의 기도를 듣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지만, 아들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짓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윗은 조금 섭섭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아들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위해 엄청난 재물을 준비하였다. 역사상 그렇게 많은 금과 은이 드려진 적은 없었다.

이 이야기가 역대상 29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먼저 다윗 자신이 “힘을 다하여”(2) “사모하는”(3) 마음으로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다.”(3-4) 다윗을 따라 백성들도 대대적인 건축 사업에 필요한 자원을 “성심으로”(9) “즐거이”(6) 드렸다. 다윗은 그 모든 것을 “즐거이”(17) 바쳤다. 강요나 두려움이나 죄책감 때문에 드린 사람은 없었다.

이 기사에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 다윗의 기도와 선택의 배후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 자기 백성들에게 풍성히 베푸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 다윗은 그 모든 일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찬양은 하나님의 성품과 행하신 일에 대한 열두 가지 고백으로 이어진다.

여섯 번째 고백에서 다윗은 “천지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한다(11). 따라서 드림 그 자체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우리의 옷, 자동차, 집, 책, 보석, 예금통장 모두가 그분의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 감정과 영혼, 눈과 귀, 혈액과 손톱, 머리카락까지 그분의 소유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그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거저 주셨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을 언제라도 다시 가져가실 수 있다. 우리가 자원하여 기쁨으로 그분께 드리는 모든 예물도 다 그분의 소유이다.

12절에서 다윗은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라고 열 번째 고백을 한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성전 건축에 바친 재물이 사람의 노력의 결과로 보일 수 있다. 열심히 일해서 받은 당당한 대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거래를 잘해서 남긴 이득을 드리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모든 것,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이다.

또한 같은 절에서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라고 고백한다. 어떤 이유로 무엇을 바쳤든 그 수고와 업적을 당사자에게 돌릴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유익과 당신의 영광을 위해 그들 안에서, 그들을 통해 역사하신다. 그분은 인자하게 베푸시며 은혜와 자비로 역사하신다. 권력과 영향력과 재능과 성공과 헌신을 비롯해 인간의 모든 것이 그분의 손길의 결과이다.

다윗의 열한 번째 고백은 수사의문문이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1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감히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하셨다고 하나님을 찬양한다.

가장 교훈적인 말은 14절 후반부에 등장한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16절에서도 다윗은 똑같이 말한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이것이 하나님 백성이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이다.

우리가 드린다 해서 그분의 자원이 불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분의 통장잔액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이미 만유를 소유하고 계신 분에게 우리가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드림은 먼저 주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땅한 반응이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간구한다. “주께서 이것을 주의 백성의 심중에 영원히 두어 생각하게 하시고 그 마음을 예비하여 주께로 돌아오게 하옵시며 또 내 아들 솔로몬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사 주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18-19).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시는 분 또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자원하여 드리려는 마음까지 우리에게 주신다. 백성들은 기꺼이 자발적으로 헌물을 드렸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힘주시는 역사가 있었다. 그들의 마음까지 지켜 주시고 주장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한없이 풍요로우신 분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그분의 소유이다. 그분은 인간의 헌금이나 기부가 없으면 큰일 나는 분이 아니다. 가난하고 무력하고 의존적인 존재는 우리다. 하나님은 언제나 주시는 분이다. 우리는 언제나 받는 자이다.

하나님은 다함없는 힘의 원천이 되셔서 연약한 자들을 세워 주심으로 당신의 영광과 위대하심을 즐거이 드러내시는 분이다. 궁핍한 자들에게 넘쳐흐르는 풍성한 은혜야말로 하나님 영광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존성과 당신의 홀로 충족하심이 드러나는 행위만 기쁘게 받으실 것이다.

‘오늘 나는 내 세례의 언약과 헌신을 엄숙히 다시금 다짐했다. 교회 성찬에 받아들여질 때 새롭게 다졌던 내용이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내 모든 존재와 소유를 하나님께 드렸다. 어느 모로 보나 나는 이제 내 것이 아니다. 나 자신에 대해 전혀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내 안에 있는 지식, 의지 감정에 대해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 몸과 신체 부위에 대해서도 전혀 권리가 없다. 손과 발, 혀에도 권리가 없고, 감각, 눈, 귀 후각이나 미각에 대해서도 전혀 권리가 없다. 나 자신을 깨끗이 드렸다. 아무것도 내 것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나는 오늘 아침 하나님을 만나 나 자신을 전부 드린다고 고백했다. 모든 힘을 그분께 드렸다. 앞으로 나는 어떤 모양으로든 나 자신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조나단 에드워드 목사의 1723년 1월 12일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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